[르포] 베를린 '히잡 시위'엔 남성이 더 많았다.. "인권 위해 싸운다"

입력
2022.10.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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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규탄 시위 나온 남성·여성 6명 인터뷰
"'히잡' 너머 '인권' 위해 나와...국제사회 돕기를"

8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 광장엔 이란 국기가 펄럭였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았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 의문사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이란 반정부 시위 현장이었다.

간헐적으로 비가 쏟아졌지만 시위 현장엔 수백 명이 모였다.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피켓을 높이 든 10세 남짓한 아이, 유모차에 아미니 사진을 붙이고 참석한 부모의 표정엔 절박함이 묻어났다. 히잡을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성 인권을 위해 시작된 시위인데도 남성이 더 많이 나온 것도 눈길을 끌었다.

베를린에서 이란 수도 테헤란까지 거리는 4,000㎞를 훌쩍 넘는다. 베를린의 시위대가 그 먼 곳을 향해 내는 목소리엔 어떤 마음이 담겼을까. 한국일보는 시위에 참여한 여성 3명과 남성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복당할까 두렵기도... 인권·자유 위해 나섰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는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의 문제 혹은 젠더 문제'로 국한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중년 남성인 아미르 마하드씨는 "'히잡 너머'를 봐야 한다"며 "자유와 인권의 문제로 시야를 확장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커다란 저항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남성은 "아미니 사건에 침묵하는 건 인권을 짓밟는 정권에 대한 동조"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란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은 "정부 관계자들이 시위대 사진을 찍어 간다는 소문이 있어서 시위 참여를 망설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엔 실외 마스크 착용 규정이 없음에도 시위 참가자 상당수가 마스크를 쓴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됐듯...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이들은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성인 페르만씨는 "(아미니 사건은) 이란 강경 보수 정권의 부당함을 또렷하게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더 이상 부당함을 모른 척하고 살 순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란 여성 인권 단체 소속인 사바씨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시위대 모두의 목소리가 같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란 정권 규탄에 대한 연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독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마하드씨는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도 화답했다. 안나레나 베어독 독일 외무부 장관이 시위대를 탄압한 이란 당국자들에 대한 유럽연합(EU) 입국 금지 및 자산 동결을 EU에 촉구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9일 보도했다. 미국·캐나다 등도 제재에 나섰다.

이란의 참상을 미국에서 알리는 유명 활동가 마시 알리네자드는 CNN 등 언론 인터뷰를 통해 히잡을 베를린 장벽에 비유했다. 그는 "히잡이라는 장벽을 허물면 (동·서독의 분단이 사라졌듯 )이슬람 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곳곳의 외침이 장벽을 정말 허물 수 있을까. 8일 베를린 시위에서 만난 미누씨는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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