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7일(현지시간) 중국을 향해 고강도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당장 중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경우 미국의 허가를 받게 됐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조치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만큼 "당장의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반도체 장비 허가제에 따른 사업 지연 우려와 중국 반도체 시장 위축이 가져올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주력 반도체 제품인 메모리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등)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다롄에서 돌리고 있고, 우시와 충칭에는 각각 D램 공장과 후공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두 회사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가 당장의 장비 공급 불안 등 위협 요소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도 미국이 중국에 공장을 둔 외국 기업에 대해선 개별 심사를 통해 반도체 장비 반입 등을 허용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 관계자는 "정부와 업계는 그동안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에) 긴밀히 협의해 왔다"며 "삼성은 각국 정부와 협의해 중국 공장이 원활하게 운용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정부와 협력해 미국의 개별 허가를 확보하기 위한 절차와 서류 준비를 꼼꼼하게 할 것"이라며 "국제 질서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중국 공장을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도 이번 조치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우려는 있지만 정부 노력으로 상당 부분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다"면서 "장비 공급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을 사실상 전면 제한하면서도 다국적 기업은 '개별 심사제'를 적용키로 한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숨통은 풀어줬다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모든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반입이 허가제로 바뀌면서 각종 서류 준비와 심사 기간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정부의 심사를 받으면서 반도체 장비·설비 관련 기술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고강도 통제 정책 여파로 중국 경제가 위축될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연쇄 파장도 우려된다. 실제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국 수출 1위 품목은 반도체였는데, 수출액만 502억3,700만 달러(약 71조5,800억 원)로 수출 비중은 30%에 육박했다.
반면 미국 정책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경우 '반도체 굴기' 정책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산업과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자립률 70%'를 목표로 칭화유니, SMIC 등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한국은 첫 번째 추격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업계는 정부가 다양한 변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국 측과 추가 협의에 나서길 기대하고 있다.
한편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는 미국 기업이 특정 수준 이상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판매할 경우 별도 허가를 받도록 했다. '특정 수준 이상'의 기준은 ①18㎚(나노미터) 이하 D램 ②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③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 내지 14㎚) 등이다. 특히 중국 기업이 소유한 반도체 생산 시설에 대한 반도체 장비 판매는 '거부 추정 원칙'을 적용해 모든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다만, 중국 내 생산 시설을 '다국적 기업'이 소유한 경우에는 개별 심사로 장비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공장에 반도체 장비 등을 반입할 경우 개별 심사를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