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 촬영 현장이 매우 앞서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노동환경이었어요. 성폭력 방지를 위한 노력 같은 부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작 ‘브로커’를 한국 배우, 스태프들과 촬영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8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환경 개선을 고민하는 한·일 영화단체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 5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일본 영화인들이 한국의 영화 단체에 만남을 제안해 성사됐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 한국독립영화협회, 일본영화감독협회 등 여러 한일 영화 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양국의 영화 제작 환경 현황과 개선 방안을 공유하고 향후 교류·연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오기환 DGK 이사는 “노동 환경, 성희롱·성폭력 문제, 창작자면서도 정당한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등에서 일본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 놀랐다”고 했다. 일본 영화 단체는 한국에서 영화관람료의 3.3%를 징수해 조성하는 영화발전기금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측 관계자는 “한국에서 영화발전기금을 부과하는 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간담회에서는 영화 제작 현장의 성폭력·성희롱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2016년 영화계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DGK는 이듬해 성폭력방지위원회를 신설했고 2019년 중·지·신(중지·지지·신고) 행동강령과 성폭력 조합원 징계 내규 등을 만들었다. 일본에서도 최근 소노 시온, 사사키 히데오 감독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며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던 영화 현장의 성폭력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이다.
니시카와 감독은 “올봄 큰 성폭력 문제가 발생해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 우선 필요한 것이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해 한국의 것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박현진 DGK 부대표는 “실태조사와 성폭력 예방 교육 등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던 건 사실이지만 직장 내 성희롱이라 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대처는 아직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어떤 점을 더 보완해야 할지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늘 나눈 이야기를 참고로 각계각처와 관계부처에 이야기를 전달하고 앞으로 좀 더 개척할 수 있는 포인트로 삼고 싶다”며 장기적 교류와 협력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