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본토와 점령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가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무너져 통행이 중단됐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교에서 트럭 폭탄이 터지면서 바로 옆 철도교를 지나던 유조차로 불이 옮겨붙었다. 사건 직후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러시아가) 도적질한 모든 것은 반환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이 시작"이라는 SNS 메시지를 날렸다. 2014년에 빼앗긴 크림반도 수복 의지를 밝힌 것이다. 2018년 크림대교를 완공하고 이번 전쟁의 핵심 보급로로 삼았던 러시아는 작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 크림대교는 케르치 해협을 가로지르는 유럽 최장(19㎞) 연륙교다. 중간에 투즐라 섬을 거치면서 크림반도 케르치와 러시아 타만을 잇는다. 타만 북쪽 추슈카 반도가 케르치에서 5.5㎞로 가장 가깝지만 추슈카 해저엔 진흙 화산이 많아 공사가 어렵다는 사정이 있었다. 푸틴이 크림을 점령하자마자 직접 다리 건설을 주도하는데도 서방의 경제 제재를 우려한 시공사들은 몸을 사렸다. 결국 푸틴과 함께 유도를 하는 사이인 재벌 측근이 공사를 떠맡았다.
□ 러시아와 크림반도 사이에 처음 다리를 지으려 한 건 나치 독일 히틀러였다. 2차 대전 중이던 1943년 크림을 점령한 히틀러는 심복인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시켜 철교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옛 소련 본토, 특히 남부 유전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반격을 받자 30%쯤 지은 다리를 폭파하고 퇴각했다. 소련군은 다리를 마저 완공했고, 1945년 2월 얄타회담 참석차 크림반도를 찾았던 스탈린은 이 다리를 건너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다리는 종전 후 해체됐다.
□ 푸틴은 2018년 5월 크림대교 개통식에서 타만에서 케르치까지 손수 대형 트럭을 운전했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2,230억 루블(약 5조 원)을 들인 웅장한 철교를 내달려 크림반도에 진입했다. 4년 뒤 우크라이나 침공의 전조 같다. 이번 트럭 폭탄 공격과 크림대교 붕괴는 푸틴의 엇나간 야망이 교두보부터 무너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어쩌면 의도된 장면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