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마다 전용 권총을 보급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
지난 7월 말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신촌지구대에서 일선 경찰과 비공개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대와 파출소에선 권총이 부족해 경찰관 여러 명이 ‘공용’ 권총을 돌려쓰고 있다. 모든 경찰관에게 전용 권총을 보급해 사격 훈련을 강화하고, 위급 상황에선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라는 게 윤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윤 대통령 한마디에 경찰 지휘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매년 5,000정가량의 권총을 구입해 5년 내 ‘1인 1총기’ 시대를 열겠다는 로드맵을 수립했고, 내년 총기 구입에 필요한 예산도 일찌감치 확보했다. 하지만 총기를 소지하게 될 일선 경찰들은 “권총을 쏠 일도 없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차라리 테이저건(전자충격기) 보급을 늘려달라”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도 “권총 보급 확대가 흉악범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경찰청은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1인 1총기 보급을 위해 5년간 권총을 구매ㆍ보급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현재 지구대ㆍ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은 5만여 명인 반면, 현장에 배치된 권총은 1만6,300여 정(32%)에 불과하다. 이에 ①일선 경찰서 무기고에 보관된 기존 38권총 약 1만 정을 현장 배치하고 ②나머지 부족분은 매년 4,900여 정을 구입하는 식으로 5년 내 보급률 100%를 달성하겠다는 게 경찰청 계획이다.
총기 보급에 필요한 예산은 192억여 원(2만4,700여 정 X 1정당 78만 원). 실제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2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정부안)에는 권총 보급 예산 38억5,000만 원이 편성됐다. 이는 올해 예산(1억5,000만 원)보다 26배나 늘어난 규모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8월 인사청문회 당시 “(경찰관) 본인이 평상시 사용하던 총을 갖고 근무도 하고, 훈련하고, 실제 상황에서 쓸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경찰 지휘부가 총기 보급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현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경위급 경찰관 A씨는 “지구대 2인 1조 근무 때 보통 한 명은 권총, 한 명은 테이저건을 들고 나간다. 권총이 부족하기보다는 현장에서 권총을 쓸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사급 경찰관 B씨도 “소규모 파출소가 아닌 이상 총기가 부족한 경우는 없다”며 “외국과 달리 총기를 이용한 범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전용 권총까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설령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지금처럼 총기 사용 조건이 까다롭고 사후 감찰ㆍ징계 부담이 큰 상황에선 전용 권총이 주어져도 발포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얘기다.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경찰관 C씨는 “총기 보급보다는 사용 조건부터 현실에 맞게 다듬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총기보다는 테이저건이나 저(低)위험 대체총기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선 지구대 팀장 D씨는 “사격 훈련은 분기에 한 번씩 하는데, 테이저건은 정기 훈련도 없고 비용절감을 이유로 출동할 때 고작 1발 갖고 나간다”며 “차라리 테이저건 관련 지원을 늘리는 게 낫다”고 했다.
또 다른 팀장 E씨는 “충격은 강하지만 살상력은 낮춘 대체총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청은 이달 중 살상력이 보통탄의 10분의 1 수준인 저위험 권총 100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오영환 의원실 질의에 “경찰관 모두에게 총기를 보급한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며 “테이저건과 가스총 등 대체수단의 활용 능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범죄 환경에서 권총을 사용할 만한 상황이 얼마나 있는지, 비(非)살상용 무기를 이용해 가해자를 진압할 방안은 없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