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박재상 이후 나쁜 놈은 누구지?

입력
2022.10.07 22:00
23면

드라마는 사회를 담는다. 1970년대 수사반장, 1980년대 사랑과 야망, 1990년대 모래시계, 2000년대 파리의 연인, 2010년대 미생과 스카이캐슬. 시대를 대표하는 드라마들은 시대를 반영할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욕구와 의식을 비춰준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자극적인 오락물이 인기를 끌고, 신데렐라 스토리 속에만 있던 여자 주인공들은 점차 독립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는 '1970년대의 수사반장이 참신한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이전까지의 드라마나 영화가 지닌 신파적 질감을 조금 벗어나 범죄와 수사를 다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1990년대에 수사반장이 빛을 잃은 것은, 대중들의 관심이 수사반장이 주로 다룬 절도, 사기, 소매치기 등 이른바 잡범에 대한 이야기에서 거대한 권력형 범죄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우리는 1970년대와는 다르게, 이야기의 끝에서 거대한 권력이나 부패한 시스템을 만나는 일이 익숙하다. 우리가 개인의 범죄보다 시급히 해결할 것이 거대한 권력형 범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드라마는 어떤가?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이야기다. '프리낫프리' 이다혜 편집장은 원작 소설 '작은 아씨들'이 네 자매가 가난과 도덕적인 유혹, 좌절 등과 싸워 스스로 삶을 일구어 간다는 점에서 드라마와 같지만, 유의미하게 다른 점이 있다는 말을 했다. 원작 소설이 보다 개인적인 서사와 역경에 초점을 둔다면, 드라마는 싸움의 대상으로 상징되는 대상이 규모 있는 조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박재상(엄기준)은 그 악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확한 한 사람으로 귀결되는 악은 시청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드라마를 즐길 명분을 만들어준다. 저 나쁜 놈! 우리편이겨라!

그러나 현실에서 악은 명확하고 가시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본질을 흐리고,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관심을 흐트러뜨린다. '이놈이나 그놈이나 다 나쁜 놈'이라는 말로 빵을 훔친 자와 빵집을 불태운 자의 죄를 동일하게 재고, 회사의 구조와 소유주를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이해조차 어렵게 만든다. 진실은 단순하기보다 복잡할 확률이 높지만, 우리는 현실에 치여 복잡한 수학 문제를 덮는다. 역시, 드라마는 현실과 다른 걸까?

지금까지 작은 아씨들은 박재상으로 상징화되는 하나의 악을 향해 좇아갔지만, 지난 2일 방영된 10화에서 박재상이 자살하면서 시청자들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절대악으로 상징되던 나쁜 놈이 죽었다. 자, 이제 누가 나쁜 놈이지? 돌을 쥔 손은 던질 방향을 잃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현실의 우리처럼. 늘 타깃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우리처럼. 페미니스트가 나쁜가? 이대남이 나쁜가? 노인이 정신이 없나? 청년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나? 이 돌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그 돌을 던지기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이 돌팔매질로 누가 이익을 보고 있을까?

'작은 아씨들'은 우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 있는 것이 잡범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거대한 권력형 범죄자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같다. 누구도 완전하게 착하지만은 않은 이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는 길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드라마는 사회를 닮았으니까. 과연 이 드라마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 결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