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포함시킨 K택소노미에 "안전기준 EU수준으로 맞춰야"

입력
2022.10.06 18:18

환경부가 지난달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킨 수정안 초안을 공개한 이후 의견수렴을 위한 첫 공청회를 열었다. 수정안 공개 당시 유럽연합(EU)보다 대폭 완화된 폐기물 처리·안전 관련 기준을 제시해 논란이 됐었는데, 공청회 참석자들은 이 기준을 EU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K택소노미 원전 경제활동 포함 공청회'를 열었다. 택소노미는 어떤 경제활동이 친환경 경제활동인지 구분 짓는 국가적 지침으로, 녹색 투자 대상을 선별할 때 사용된다.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면서 관련 사업들은 친환경 투자·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앞서 환경부는 K택소노미 수정안 초안을 공개하면서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 연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 것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EU택소노미와 동일한 친환경 인정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면서 2025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가동 세부계획을 갖추도록 했지만, 우리나라는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채 세부계획과 이를 담보할 법률이 있으면 된다고 정했다.

발제자로 나선 강재열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EU택소노미가 K택소노미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기준을 내세우고 있는데, EU 회원국에 원전을 수출할 때 이 차이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실제로 지난달 20일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운용자산(APG) 측이 EU택소노미를 충족하지 않은 원전 사업은 친환경이라 볼 수 없고 한국 투자(채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고준위 방폐장 마련과 관련해 법률 제정을 조건으로 내건 것을 지적했다. 그는 "처분시설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원전이 택소노미에 해당하지 않게 돼 국내외 원자력 산업 진행에 난항이 예상된다"면서 "법률에 처분 일정이 명시되지 않으면 EU택소노미와 정합성·부합성이 떨어져 원전 수출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방폐장 마련 시기를 EU처럼 2050년쯤으로 못 박는 방식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EU가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켜 우리도 이를 참조해 만든 것이라면, (적어도) 그 수준은 맞춰야 할 것 아니냐"면서 "우리나라 제조업 중 세계 선두권에 있는 업체들은 언제든 EU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데, K택소노미가 전체 신뢰도를 떨어뜨려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들은 원전을 친환경 경제활동에 포함시킨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원전의 필요성은 에너지 공급, 수요 등을 논의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택소노미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김정덕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핵폐기물을 만들지 않고 탄소중립을 달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청회 도중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핵발전 그린워싱 중단하라' '녹색분류체계 그린워싱 중단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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