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현안이 정쟁의 블랙홀로 빠져든 작금의 상황은 '권력의 말'에서 비롯됐다. 온 국민이 듣기평가하듯 '비속어 논란'에 휩싸인 윤석열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는 것은 권력의 언어가 갖는 무게감 때문이다. 권력자의 '아무 말'은 폭력적 언어의 역치를 높이고, 관련 여론 확산과 함께 증오와 선동의 언어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권력자의 정확한 언어 사용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스스로 '예술사회학 연구자'라 칭하는 작가 이라영은 신간 '말을 부수는 말'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권력의 말'과 권력이 정해 준 언어에 의구심을 품는 '저항의 말'을 분석한다. 이처럼 언어에 초점을 맞춰서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일상적 현상으로 발생하는 문화화된 폭력을 짚는다. 그는 고통, 노동, 시간, 나이 듦, 색깔, 억울함, 망언, 증언, 광주/여성/증언, 세대, 인권, 퀴어, 혐오, 여성, 여성 노동자, 피해, 동물, 몸, 지방, 권력, 아름다움 등 21개 동시대 화두를 제시하면서 이와 관련된 혐오 차별적 언어 사례를 들어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나 권력자의 무지 등의 문제를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가령 '창작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모순적이다. 창작과 노동이 사회에서 가지는 위상이 다르기에 '창작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널리 쓰이지만 '노동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는 고통보다는 정신적 고뇌의 산물로서 창작에 방점이 찍힌 표현인 까닭에 정작 예술가들의 경제적 문제는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지 않는다.
말이 폭력이 되는 순간은 도처에 깔려 있다. 2019년 서울대 시설 노동자들의 파업 당시 도서관장이던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했다. 그는 '볼모', '금기', '인질' 등의 어휘를 사용해 노동자들을 악인화했다. 노동보다 공부라는 행위에 권력을 부여한 사회 정서가 바탕이 된 주장이다.
세대를 호명하는 표현에도 차별과 배제가 숨어 있다. 1970년대 중반 이전 출생자만 해도 비대졸자가 많았건만 '86세대'. 'X세대' 등 학번과 세대를 동일시한 표현이 스스럼없이 쓰였다.
저자는 또 '왕자 낳은 후궁', '권력의 시녀', '효자 상품' 등을 "모욕은 여성에게, 영광은 남성에게" 돌리는 표현이라고 꼬집는다. 신체에 관한 표현에 있어서는 비장애인이 별생각 없이 쓰는 언어가 '권력의 말'이 되곤 한다. 불균형적 상태를 이르는 '절름발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내용을 설명하는 '깜깜이' 등은 장애인에게는 단순한 언어 수사가 아닌 폭력적 표현이 된다.
책은 '권력의 언어'에 지지 않으려는 '저항의 언어'는 정확한 언어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정확하게 보려는 것, 정확하게 인식하려는 것, 권력이 정해 준 언어에 의구심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며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원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