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만 연동된 현대사...지정학적 운명

입력
2022.10.05 17:00
24면

편집자주

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미중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대만은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돌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직접 연계되지 않은 비극이지만 만약의 대만 사태는 다르다. 대만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양국의 공통된 지정학 때문이다. 대만해협이 소용돌이치면 한반도 역시 휘말려들 수밖에 없다. 대만해협에서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 중국은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활동을 증가시키고 북핵문제는 심화한다.

실제로 한국전쟁을 비롯한 최근의 역사에서 한국과 대만은 많은 지점에서 연동되어 움직였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격동을 함께했고 핵 무장을 시도했다가 미국에 의해 좌절된 경험마저 동일하다. 무엇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유사한 외부환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중 경쟁이 격해지면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작년 3월 블룸버그 기고에서 “대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평했다. 대만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미 제국의 종식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대만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인사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사령관을 지낸 더글라스 맥아더였다. 그는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면 극동의 미군 방어진지 전체가 결정적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작전이 불가능해져 방어선이 미 본토의 서부해안까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만이 절대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란 불침항모란 비유도 이때 퍼졌다.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은 냉전 초기 중국이 차지하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유럽과 일본에서의 대소련 봉쇄정책이 급선무였고 중국은 거대한 구빈원에 불과하다고 봤다. 딘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도 미국의 방어선을 그은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과 함께 대만을 제외했고, 대만에 대해선 군사적 원조나 지원까지 중단했다. 이런 인식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뒤바뀌었다.

한국전쟁은 대만과 한국이 안보상 서로 연계된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전쟁 발발 직후 첫 회의에서 미 정책당국자들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제7함대 전함을 대만해협에 파견해 우려되는 중국의 대만 공격을 저지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리도록 했다. 맥아더는 한때 더 많은 중국군이 대만 주변에 배치되면 북쪽이 허술해질 것으로 보고 대만해협의 긴장을 이용하려 했다.

반대로 중국은 한반도의 수렁에서 미군을 저지하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까지 공격을 확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국은 자칫 동북부 전체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 보고 30만 명에 이르는 중국군을 압록강 너머로 보내 전투에 들어갔다. 이에 맥아더는 만주 공습과 중국해안 봉쇄, 5만 명가량의 국민당 군대 활용, 전술적 원폭 사용이 없다면 한반도를 지켜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쟁의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맥아더는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중국 남쪽을 침공하도록 지원하면 한반도에서 중국 압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미군이 국민당 군대를 지원하면 전쟁이 중국 본토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반대 논리에 막혔다.

대만과 한국을 연동시킨 사고는 최근 들어 미 정책당국과 언론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만 위기 시 주한미군의 역할, 한국의 지원 가능성을 놓고 날카로운 질의와 답변들이 오가고 있다. 중국의 대만 위협이 ‘뉴 노멀’인 시대인 까닭에 동맹 차원에서 한국이 대중 견제에 기여하길 원하는 미국 분위기가 강해진 모습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반발 이후 미국 내 반중 분위기가 커진 측면도 크다. 펠로시 의장이 방한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것과 한국 정부의 의지를 관련 지어 확인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된다.

미국에 대만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차단하는 중요한 고리이고, 미국 산업은 대만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적 중요성에 더해 대만은 민주적 가치까지 공유하고 있다. 전략적 중요성이 더해진 대만해협 안정을 위해 미국은 군사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와 주한미군의 한반도 역외 역할, 한국의 군사적 기여에 대한 기대를 높여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중국은 경제적 무기를 이용해 한국의 중립적 입장을 압박하려 할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성훈 책임연구원은 7월 전략보고에서 “한미동맹의 노골적인 대중국 견제는 지양하되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맹차원에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식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미동맹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는 현 정부로선 미국이 기대하는 협력 수위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하면서 중국 반발에 대한 대응도 함께 고민할 때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