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돌아오라” 그들은 그렇게 가미카제가 됐다

입력
2022.10.07 05:00
15면
책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한국인 저자, 일본군 심층 인터뷰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개인보다 위에 있던 국가의 폭력성 고발

편집자주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945년 4월 미군이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하자 일본군은 오키나와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 전쟁을 이어갔다. 일본 내 식민지였던 오키나와는 미군과 일본군 모두의 공격을 받았다. 일본은 오키나와 방언을 쓰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간주해 처형하는 한편, 충성스러운 일본인이 되어 미군과 싸우라고 요구했다. 오키나와 곳곳에는 특공 보트를 운송하기 위한 인공 동굴이 만들어졌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을 포함한 군속 노동자들이 땅을 파고 배를 날랐다.

제주 출신으로 현재 오사카공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광홍씨는 어린 시절 고향 해안에서 오키나와의 것과 같은 인공 동굴을 목격한다.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며 만들어놓은 군사시설은 제주도에도 남아 있었다. 이후 그는 학사장교로 해병대에 입대하여 “우리들은 방패 없이 바다와 모래에서 독수리 되어 날은다”(달려라, 사자같이),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브라보 해병)고 외치는 군가를 배웠다. 보호할 장비는 없지만,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싸우라는 군가의 씁쓸함은 “죽어서 돌아오라”는 응원을 받은 제국의 일본군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는 박광홍씨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인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쟁의 의미를 되짚어본 책이다. 조선을 침략한 괴물과 같은 일본인이 아니라 전쟁에 동원된 국민의 내면을 살펴봤다. 통신병으로 일한 기시 우이치는 교육의 무서움을 강조하면서 “너희는 폐하의 자식이다.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반면 주오대학 출신으로, 학도병이었던 히로토 아키라는 천황 숭배를 가르치던 교육 내용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에게 교육칙어를 비롯한 국체 사상은 와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로토는 ‘왕이 곧 국가이고 신’이라는 국체 사상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왕을 신으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졌다. 누구도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전쟁에 나서야 하는 총력전 체제에서 국민의 의미는 ‘전쟁에서 죽음의 운명을 공유하는 자’로 거듭난다. 선전영화에서는 마을에서 지원병을 위한 성대한 환송회를 펼치고, 가족들은 전선에 나서는 아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가족들은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만이 가능한 삶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당부는 불경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폭탄을 실은 보트나 전투기를 타고 나가 적의 함대에 부딪혀 폭파했다. 그러나 특공 전술은 안에 들어가 있는 군인을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병사가 탈출해서 살아 돌아오는 것을 예상하지 않고 설계되었다. 게다가 일본군이 기대한 만큼의 군사적 효과도 없었다. 인간어뢰의 명중률은 2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패전 후 해군은 특공이 전쟁범죄로 심판될 것을 우려하여 대원들의 출격은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군인들이 애국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특공대원이 자발적으로 나선 데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게 된다는 약속이 주효했다. 국체에 대한 입장은 달랐지만 기시도, 히로토도 야스쿠니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광홍은 일본 제국주의의 총력전 체제는 육군, 해군 등 일본 군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결과였고, 이러한 비합리성을 지탱했던 것이 야스쿠니였다고 본다. 이는 군인들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본인 여성 출신 일본군 ‘위안부’들도 죽어서 야스쿠니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야스쿠니는 국가를 위해 의미 있는 죽음을 선택하라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였다.

국민보다 국가가 위에 있는 사회구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중심의 발전 구도, 장애인에 대한 낙인 등은 국가가 국민을 희생시킨 사례들이다. 국가는 계속 부강해지지만 국민은 그렇지 않다. 미군 기지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라는 강력한 우방을 얻기 위해 한국 여성들은 강제 수용과 구금을 감내해야 했다.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은 국가가 성매매를 방조하고 국민을 불법적으로 수용했다며 미군 ‘위안부’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국가의 통치 시스템이 저지른 폭력을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는 있지만, 국민은 없는 체제’에 대한 반성이 될 것이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