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님 들어오세요.”
“입안에 벌레 있는지 보자고 했잖아, 서준아, 서준아!”
치과 진료를 앞두고 이름이 불리자 겁먹은 듯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아들을, 엄마는 황급히 뒤쫓아 갔다. 익숙한 듯 건물 출입구를 우선 막아서고 “벌레 있나, 함 보자”라며 달래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 기자는 지난 8월 31일 박서준(17)군과 엄마 전은정(53)씨의 울산대병원 울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 방문에 동행했다. 발달장애인은 가만히 한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고, 치과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에 두려움을 느껴 치과 치료가 어렵다.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개소 예정지 포함 전국 14곳)는 이들의 특성에 맞춰 전문화된 치료를 제공하는 지정 병원이다.
진료대에 눕지 않으려 애쓰는 서준군에게 치위생사 네 명이 붙었다. 몸을 고정시키는 신체 억제 장비가 필수다. 전씨는 연신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라며 마음을 졸였다.
일정 시간 가만히 서 있어야 촬영이 가능한 파노라마 엑스레이 대신, 의료진은 흰색 카메라 모양의 휴대용 엑스레이 장비를 사용했다. 검진 후 의사와 엄마가 치료 방향을 상의하는 동안, 서준군은 이따금 불안한 듯 "악!" 소리를 냈는데 치위생사가 그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이 모든 건 의료진이 장애 특성을 이해하고, 맞춤 장비도 갖춰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날 진단을 받은 서준군은 두 차례 병원을 더 방문해 치료를 해야 한다. 충치 3개 치료에 따른 예상 비용은 무려 440만 원. 병원에서 준 소견서에 적혀 있다. 치아 개당 80만 원 크라운 비용에, 회당 100만 원이 드는 전신마취가 두 차례 필요해서다. 전씨는 "전부 부담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전전긍긍했다. 그나마, 추후 실제 치료가 이뤄지고는 애초 소견서와 달리 감면 지원을 받게 됐지만 그래도 200만 원이 넘는 치료비가 책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부터 장애인 치과 전신마취 비용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했지만,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 급여에 해당하는 치료를 받을 때는, 전신마취 비용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러나 전씨처럼 효과가 확실한 크라운 재료(비급여)를 택하게 되면, 마취 비용도 비급여 항목에 해당돼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치료도 쉽게 받지 못한다.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치과가 극히 드물다. 비영리단체 '스마일재단'은 장애인 환자 진료가 가능한 치과 명단 총 363곳(2022년 9월 기준)을 공개하고 있는데, 수면치료나 전신마취가 필요한 발달장애인이 갈 수 있는 치과는 52곳뿐이다.
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도 '장애인 의료 인프라' 부족에 대한 고통의 증언은 무수히 많았다. 강원 춘천에서 자폐인인 딸 윤나영(22·가명)씨와 사는 이지선(가명)씨는 "강릉에도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1곳 있지만, 춘천에선 서울보다 강릉 가는 게 더 멀다. 2시간은 걸린다"며 "딸에게 아직 안 빠진 유치(乳齒)가 있는데, 그걸 빼겠다고 서울까지 가서 전신마취할 생각을 하니 결심이 안 선다"고 했다.
전씨는 "아들은 그래도 어릴 때부터 두세 달에 한 번 치과를 데리고 다녀서 익숙해하는 편이지만, (거주)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일일이 케어도 어려우니 이를 하나씩 그냥 뺀다더라"라며 안타까워했다.
채혈이 동반되는 건강검진, 주사기를 이용해야 하는 백신 접종도 난감하다. 경남 거제도에서 홀로 자립 생활을 하는 지적 장애인 A(44)씨의 누나는 "동생과 지역 병원에 가면 장애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기 일쑤라, 하다못해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해도 왕복 2~3시간 거리의 부산까지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장애인 의료 접근성 확대' 정책은 성과가 미진하다.
일례로 '장애 친화 건강검진기관' 제도가 있지만, 실제 운영 중인 곳은 전국 9곳에 불과하다(2022년 4월 기준·예정지 포함 시 총 19곳). 시설 변경과 추가 인력 채용이 필요해 부담은 큰데, 정부 지원은 적어 병원들에게 유인책이 못 돼서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 역시 의사와 장애인 당사자 양쪽 모두 참여가 저조해, 전국 중증 장애인 98만여 명 중 2,100여 명(0.2%)만이 이용 중인 상황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임선정 수석은 "장애인이 건강관리를 받으러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은 보건소지만, 보건소 장애인 담당 인력은 1명이거나 아예 없다"며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와 보건소가 보건·복지·의료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전문가(다학제) 팀을 구성해 장애인이 방문했을 때 필요 서비스를 연계하고 발달장애인 거점병원, 구강진료센터 등 건강 인프라도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수석은 이어 "장애 친화 건강검진기관 사례만 봐도 공모 시 참여자가 없어 여러 차례 재공고를 내고 있다"며 "민간에만 의존해서는 장애인 건강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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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3>밑 빠진 독에 돈 붓기
<4>인력공급, 양과 질 놓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