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했던 여성의 性지식·정보, 수면 위로 띄웠어요" [○○하는여자들]

입력
2022.10.12 21:00
<2>  '퍼플티비' & '자기만의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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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류 여성이 사실 아담의 짝 이브가 아니라면? 심지어 그 여성은 아담의 일방적인 남성 중심 성관계에 반발해 도망쳐버렸다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충실히 믿는 이는 크게 반발하겠지만, 유대 신화는 일찍이 이브 이전에 다른 여성이 존재했다는 가설을 제공한다. 그 여성의 이름은 아담의 집 나간 첫째 부인, '릴리트'다.

신화에 따르면, 릴리트는 늘 아담이 주도하고 그가 원할 때 무조건 응해야 하는 성관계에 불만을 느꼈다. 결국 릴리트는 아담과 크게 싸우고 홍해 인근으로 도망쳤고, 사막에서 혼자 살면서 뭇 남성을 유혹했다고 한다. 훗날 여러 구전 설화와 문헌은 그런 릴리트에 '악령들의 여왕' '밤의 마녀' 같은 이미지를 덧씌웠다.

오늘날 시선에서 릴리트를 바라보면 어떠한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한때 '문란한 요부'의 아이콘이었던 릴리트는 시대 변화와 페미니즘의 재해석을 거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여성으로 다시 탄생했다.

신화 속 인물이 기천년의 시간을 거쳐 다시 해석되는 동안 오늘날 '여성들의 성(性)'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어떤 위협에도 지켜야 하는 '정조'나 '순결' 개념은 낡은 유물 취급을 받곤 하지만, 여성들의 자유로운 성생활은 이따금 지탄을 받거나 여전히 꽁꽁 숨겨야 하는 것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즐거운 성생활은 여성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에 직결되는 요소다. 성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받는 것만큼이나, 여성들이 건강하고 자유롭게 성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여권 전반의 향상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여성들의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수면 위로 띄운 여성들이 있다. 멀티미디어 프로덕션 '방아'의 유튜브 채널 '퍼플티비'와 펨테크 스타트업 '아루'가 운영하는 여성 성지식 플랫폼 '자기만의방'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다루는 주제는 질염, 피임, 자궁경부암 백신 등 건강 정보에 국한하지 않는다. 여성의 성생활을 노골적이지만 실용적인 소재를 동원해 풀어낸다. 허스펙티브는 김미래(39) 방아 대표 겸 퍼플티비 총괄프로듀서와 이명진(32) 아루 대표를 지난달 말 각각 비대면 화상을 통해 만나, 왜 지금 '여성들의 성'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물었다.


즐거운 성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퍼플티비'

"여러분. 엑스(X)와 와이(Y)가 방아를 할 때 Y는 약 90%가 오르막길에 오르지만, X는 약 50%만이 오른대요."

유튜브 채널 퍼플티비의 영상은 암호 같은 대사로 가득하다. 번역하자면 이렇다. "여러분. 여성과 남성이 성관계를 할 때 남성은 약 90%가 오르가슴을 느끼지만, 여성은 약 50%만이 느낀대요."

퍼플티비에는 '정숙이모' 등 다양한 인형 캐릭터가 등장해 성지식을 설명한다. 사실상 김 대표가 1인 체제로 기획, 제작, 촬영, 편집한다. 구독자 18만4,000여 명. 여성이 55%에 달한다.


-왜 여성의 성인가.

"여성의 성은 이용의 대상이었을 뿐, 항상 성욕은 통제되고 억눌려 왔다. 대부분 연구 결과에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비율은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평생 못 느끼고 죽는 여성도 많다. 성적 불균형을 균형 있게 만들고 싶었다."


퍼플티비는 학교 내 성교육에서 볼 법한 피상적인 지식보다는 성관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팁에 관한 콘텐츠에 주목한다. 구독자들이 직접 채널을 보고 따라한 뒤 남긴 후기에서, 얼마나 성지식에 대한 갈증이 컸는지 엿볼 수 있다.

"자극적으로 꾸며서 조회수를 늘릴 수도 있을 텐데, 교육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드디어 첫 키스를 했습니다. 저희 둘 다 미숙했지만 영상을 잘 생각하며 했더니 서로 좋았던 것 같아요."

-키스하는 방법,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방법 등을 시연하면서까지 알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보여줘야 이해도 빠르다. 자극적으로 보여주기보다 귀엽고 편안하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인형탈을 쓴다."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 텐가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95.7%가 여성은 56.6%가 자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응답 비율이 낮다.

"억눌렸던 성적 욕망을 되찾으려면 무엇보다 자기 몸을 스스로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히 상대방의 기여만을 기대하며 수동적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 남의 손에 자신의 욕망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기억에 남는 구독자 반응이 있다면.

"채널에 '첫 경험 가이드' 시리즈가 있다. 구독자 중 한 분이 '첫 경험 전 남자친구와 함께 시리즈 영상을 봤는데, 힘들고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거사를 잘 치른 것 같다'는 후기를 보내줬다. 무척 감사한 경험이다."

-어떤 역할을 하는 채널이고 싶나.

"요리처럼 성을 소개하고 싶다. 요리 유튜버는 맛있는 레시피를 쉽게 소개하고, 시청자도 편견 없이 잘 받아들이지 않나. 여성이건 남성이건 성을 가볍고 건강하고 즐겁게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되고 싶다. 우리 콘텐츠를 여성만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의 몸이 작동하는 방식은 여성 스스로 아는 것도 좋지만 나의 상대가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들을 위한 성지식 콘텐츠 플랫폼 '자기만의방'

"꾸준히 병원에서 경구피임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는데 이번에 비대면으로 처방받아 보려 해. 경험 있는 자기 있어?"

성지식 플랫폼 '자기만의방' 애플리케이션(앱)은 여성들의 내밀한 수다가 오가는 '여탕 사우나' 같다. 약 2만 명의 여성 회원은 피임과 성관계뿐만 아니라 연인과의 갈등, 산부인과 질병 등 여성으로 살면서 흔히 품었지만 터놓기 어려웠던 고민을 활발하게 나눈다.

인증을 통해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자기만의방은 여성들에게 편안한 성지식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서비스다. 가입만 하면 여성들이 모인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유료 구독을 할 경우, 논문과 과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400여 건의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다.

-자기만의방을 창업한 계기가 있다면.

"여성으로 살면서 스스로 느꼈던 불편함이 창업 계기가 됐다. 어렸을 때 1년 동안 혼자 질염을 앓다 병원에 갔는데 처방해 주는 약을 먹으니 금방 낫더라. '왜 이런 정보들을 여성들은 양지에서 공유하지 않지?'라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가도 중요할 것 같은데.

"여성들은 대부분 성 관련 이야기를 정말 가까운 친구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익명 회원들과 나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정보 신뢰성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 자기만의방은 검증된 논문과 자료를 활용한 성 지식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 올바른 용어 사용은 물론이고 여성 관점에서 서술한다. 여성 건강에 필요한 지식과 성생활을 위한 정보는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검증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성을 위한 성지식 콘텐츠를 만들 때 특히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페미니즘이나 여성 중심 관점을 고려한다. 여성도 성 관련 시청각 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폭력적으로 성을 다루거나 다른 여성을 착취하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포르노그래피나 남성의 성적 취향과 관점을 반영해 만들어진 자료를 보며 성생활을 하면 여성들은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기 쉽다."

자기만의방은 자체 체크리스트를 두고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등 오디오 콘텐츠를 활용해 여성들이 다채로운 성적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돕는데, 이 과정에서도 '안전한 성관계'를 암시할 수 있는 윤리적인 내용을 고려한다.

-궁극적으로 여성들이 자유롭게 성을 얘기하는 게 왜 중요한가.

"성은 인생에 있어 무척 중요한 요소다. 성을 빼놓고 자신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기 어렵다. 여성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면 앞으로 여성들의 삶에 관한 다른 주제도 점점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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