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사전 검열' 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위원)
"여야가 합의되면 상영해 드리겠다는 겁니다."(국민의힘 윤재옥 외교통일위원장)
국감 첫날인 4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감은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 평가를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충돌로 파행을 거듭했다. 여야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국감장 퇴장 문제와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 영상 재생 문제를 두고 격하게 대립했다.
윤 대통령의 순방외교를 '외교참사'라고 규정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감 시작과 동시에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며 박 장관을 몰아붙였다. 포문을 연 건 민주당 간사 이재정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달 본회의에서 해임건의안이 처리된 박 장관을 겨냥해 "의회주의를 존중하고 헌법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박 장관의 회의장 퇴장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참배 일정 무산, 미국 유엔총회 계기 한미ㆍ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저자세 외교' 논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국민의힘 간사 김석기 의원이 "해외 순방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것이야말로 정치 참사"라고 옹호했다. 그러자 "박 장관은 스스로 사퇴하고 국감장에서 퇴장해 주는 게 예의"(김경협 의원), "사과를 하든지 사퇴를 하라"(박정 의원)는 발언이 나오면서 여야 간 설전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번 순방외교를 둘러싼 극심한 견해 차이가 표출됐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한미 정상회담은 일정을 구걸하다시피 해서 잠깐 48초 대면했고, 한일 정상회담은 유엔 일본 대표부까지 찾아갔다"며 "그야말로 굴욕적인 외교"라고 질타했다. 이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당시 회담을 생산적이고 뜻깊다고 했다"며 "국감을 난장으로 만들 거냐"고 반발했다. 결국 외통위원장인 윤재옥 위원장은 국감 시작 30여 분 만에 정회를 선언했다.
여야는 오후 2시 재개된 국감에서 또다시 맞붙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관련 영상 상영을 요청하면서다. 해당 영상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풍자한 영국 BBC 시사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윤 위원장은 "여야 간사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막아섰고, 이에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사전 검열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하면서 또다시 고성이 오갔다. 일부 의원은 책상을 '쾅' 치며 "그렇게 진행하면 안 된다. 협의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이에 오후 국감 역시 개의 40여 분 만에 또다시 정회됐다.
국감이 여야 의원들의 충돌로 공전하면서 박 장관에 대한 질의는 오후 4시가 돼서야 가까스로 이뤄졌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한미 정상 간 '48초 환담'을 언급하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문제든 한미 통화스와프 문제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장관은 "시간은 짧지만 핵심적인 이야기는 다 했다"고 답했다.
외통위 국감은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지난 인도 방문에 대한 진실공방으로 또다시 파행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한 언론사 보도를 인용해 "2018년 청와대는 김정숙 여사의 3박 4일 인도 방문을 공개하면서 모디 인도 총리의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며 "진실은 달랐다. 한국 측이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정 의원은 "이런 것을 무슨 외교라고 하는가. 영부인 세계일주 꿈을 이뤄 준 버킷리스트 외교인가"라며 국감에 참석한 외교부 직원들에게 "제가 발언한 것이 사실관계가 맞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정 의원이 발언을 마치자 야당에서 반발이 쏟아졌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제대로 알고 질의를 하든자, 그렇게 질문을 하면 지금이 어느 정부인데 대답을 하나. 도대체 그렇게 비열하게 질문을 하나"라고 따졌다. 윤재옥 위원장은 여야 의원들 간 설전이 거칠어지자 정회를 선언했다. 자정을 넘겨 5일 속개된 회의에서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최초 인도 측에서 문 대통령을 초대했는데 당시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에 인도 측에서 다시 김정숙 여사 초청을 대신 제안했다"며 "정치적으로 왜곡하지 않길 바란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