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들은 왜 이렇게 별난 걸까요" 중등 교사의 하소연

입력
2022.10.07 17:30
<9> '남학생 분반' 지도에 어려움 겪는 교사

편집자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뜻의 밈인 '무물'을 아시나요. 한국일보 허스펙티브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무물 콘텐츠’를 격주 금요일마다 연재합니다.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일상에서 흔하게 겪을 법한 다양한 고민 상황을 통해, 함께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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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남녀 분반 중학교에서만 10년 이상 근무한 교사입니다. 요즘 제 고민의 절반은 남학생반의 생활지도입니다. 일반화하거나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경험상 늘 생활지도나 면학 분위기 조성이 어려운 것은 '남학생 분반'입니다.

어느 정도냐고요? 오죽하면 45~50분 수업 가운데 "앉아라" "수업 들으라"는 말만 20분 넘게 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 형태의 교권 침해가 학교 내에서 매해 발생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학교에 불을 지른다거나 교사를 가격하는 사건 등을 교육 현장에서 목격했습니다.

결코 학생의 성별을 일반화해 '남학생이 문제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익히면서 사람을 성별로 분류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 주로 남학생에 의한 폭력과 일탈 행위를 10년 이상 접하다 보니, 제 마음속에서 '남학생은 지도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차츰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요. (최선생·가명·37·중등교사)

A. 먼저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선생님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 교육자로서 편견 없이 평등하게 아이들을 대하려는 신념과 실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고충 사이에서 얼마나 고민이 많으실지, 보내주신 사연 속에서 그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따금 단숨에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내가 교육자로서 부족해서 그런가' 자기검열을 하기 쉽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별 교사가 겪는 문제를 개인적인 경험과 노력 문제로 치부하면, 학교라는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공고한 젠더 기반 구조적 불평등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네스코와 유엔 여성(UN Women)이 2016년 제안한 개념 중에 '학교 관련 젠더 기반 폭력(school related gender-based violence)'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어떤 폭력은 젠더에 대한 규범 혹은 고정관념과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는 건데요.

최근 연구는 학교 내에서도 젠더 권력 불평등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는 사제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밝힙니다.(학교 내 성차별적 혐오행동 대응을 위한 제도적 과제, 경인교대, 2022년 3월) 이 같은 관점에서 '학교 내 젠더 기반 폭력'은 가해자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학생들의 성차별적 행동을 낳는 학교와 사회 전반의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남학생 vs 여교사'의 구도로 접근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폭력의 가해자는 남학생이고 피해자는 여성 교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저희 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여성 교사에게 주먹을 날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충격을 받고 조퇴하는 피해 동료 교사를 보며, '교권'이라는 단어가 교실의 위계질서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교권은 존중되어야 하며,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교육공무원법 제34조

A. '교권'을 규정하는 현행법입니다. 정확하게 무엇을 교권이라 정의하는지 그 유래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흔히 교권은 "교권이 실추됐다"는 표현처럼 '교사들의 권위'로 해석되기 마련입니다. 이 와중에 '응당 존중받아야 할 교사의 인권'이라는 의미의 '교권'은 끼어들 틈이 없지요.

학교는 개별 교사와 학생뿐 아니라, 동료 교사, 학교 관리자, 학부모, 교직원,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복잡한 역학 관계를 맺는 공간인 만큼, 최근 교육계에서는 기존의 교권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은 "지금의 '교권' 개념으로는 여성 교사가 겪는 다양한 층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며 "본질적으로 여학생과 여교사가 겪는 (학내) 성폭력, 성차별적 괴롭힘, 페미니즘 백래시는 학생이라서, 교사라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경인교대의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는 교사와 학생 간 위계를 포함하며 성별, 연령, 직위, 노동의 위계 등 다양한 위계가 작동하는, 다층적인 권력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공간"입니다. 보고서는 이런 복잡한 권력 관계 안에서 "적지 않은 수의 교사들이 성적 괴롭힘과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연령이 낮은 여성 교사의 경우 그 빈도가 더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2021년 전교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행위자 중 54.1%가 학생이었습니다. 성별을 나눠 들여다봤을 때 남성 교사는 동료 교사(62%)를 주요 성희롱·성폭력 행위자로 꼽았지만, 여성 교사는 학생(55.8%)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조사는 "교사-학생 간 지위에 따른 위계가 백래시 행위를 통해 역전될 수 있으며, 여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단순히 지위 위계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젠더 권력 관계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꼬집습니다.

Q. 저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고설킨 문제라는 말씀만으로 큰 위안이 됩니다. '교사가 학생 하나 제압하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느냐'는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어디에 털어놓지도 못했거든요. 남학생반 지도가 너무 힘든 나머지 '도대체 남자 아이들은 왜 이럴까' 한탄도 속으로 하게 됩니다. '남학생 다루는 법'과 '여학생 다루는 법'을 정말 달리 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편견을 갖게 되는 제 자신과 상황 모두가 싫습니다.

A.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소속 황고운 교사는 "학생들도 이미 학교 밖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는 힘의 서열을 배우고 익힌 경우가 다반사"라며 "남학생의 기질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힘의 논리로 우열을 가리는 사회 분위기를 배웠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닌 만큼 미디어나 일상생활에서 불평등한 젠더 위계 질서를 체화해 이를 교실에서 반복한다는 겁니다.

학교 공동체의 구조적 접근이 요구되는 사안이지만, 학교 내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교사들은 적절한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결국 개별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죠. 교사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엄격한 교사'가 되거나 자기 검열을 거듭하는 방식이 대표적 예인데, 이런 각자도생 방식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황 교사는 "'남학생 다루는 법'이라는 것은 결국 다루기 힘든 남학생들을 힘으로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폭력적인 분위기를 잡기 위해 벌점을 매기거나 남성 교사가 담임을 맡는 식의 접근은 학생들로 하여금 '역시 힘이 세야 된다'는 논리를 답습하게 한다"며 "교사 개인의 노력이 아닌, 학교 공동체 전체의 자정 시도가 필요한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할수록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교사들과의 연대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황 교사는 제안합니다. 분명 교내에 같은 고민을 가진 선생님들이 있을 테니 함께 얘기를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 맞는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라는 것만 알게 되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같은 뜻을 나누는 교사들과 함께 강사를 초청해 노하우를 공유하고,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함께 해결책을 궁리하는 동료로 거듭나죠.

창의적 체험활동 같은 재량 시간을 활용해 성평등 교육을 편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실을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불편해하는 남학생들도 점차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테고요. 이렇게 대화와 연대의 노력을 통해 조금씩 학교 공동체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데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 참고 자료

-'학교 내 성차별적 혐오행동 대응을 위한 제도적 과제', 경인교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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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