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교수도 멘탈 못잡는 게 주식... 인내보다 손실이 달콤한 이유는

입력
2022.10.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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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언제나 실패하는가]
오성주 서울대 교수가 본 개미의 심리기제


편집자주

여러분의 주식 계좌는 어떤가요? 잔고가 아직 빨간색인 당신, 상위 1%의 초고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앱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심정일 겁니다. 왜 이렇게 우리 개미는 실패하고 마는 걸까요? 연준의 금리인상, 기울어진 운동장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외부 환경과 상관 없이 상승·하락장 모든 국면에서 개미가 족족 실패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차트의 유혹'이란 책을 통해 주식투자를 지각심리학 관점에서 풀었던 오성주 서울대 교수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마이더스의 손'을 꿈꾸며 시작한 주식투자. 그러나 대부분 개인투자자(개미)들은 스스로 '마이너스의 손'이었다는 슬픈 현실을 절감하며 고민에 빠진다.

장기적으로 지수는 우상향하는 것, 우량주를 묻어두고 진득히 기다리면 된다는 원칙으로 대개 투자는 시작된다. 그러나 일희일비 하지 않으면 개미가 아니다. 시시각각 가격의 출렁거림 앞에 한낱 개미의 좁은 도량은 이내 평정을 잃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초조함에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고 만다. 그런데 이 때부터 사면 가격이 떨어지고, 버티다 못해 팔면 귀신 같이 올라가는 마법이 시작된다.

왜 시장은 개미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는 걸까? 기관과 외국인이 개인을 가지고 노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절대적 법칙이 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서인가? 그도 아니라면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단 말인가?

'주식심리학' 강의를 개설한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택의 기로, 고뇌의 순간에 개미를 지배하는 심리적 기제를 통해 개미의 실패 이유를 설명했다.

"인간은 자극을 원합니다.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어요. 돈을 잃을지라도, 주식을 사고팔 때 느끼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통보다 나아요. 그래서 우리는 장기 투자가 답이란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흥분을 주는 단기 투자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거죠."

지각심리학(Perceptual Psychology)이라는 관점으로 주식투자의 위험을 설파하는 오 교수에게 실수와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주식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개미의 속성에 대해 들어봤다. 지각심리학이란 인간이 오감을 통해 외부 자극을 수용하고, 행동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주식시장에 적용되지 않는 현실의 물리 법칙

오 교수 역시 2020년 8월 주식을 시작한 '주린이'다. 증시가 코로나 충격(2020년 3월)을 벗어나 저변을 넓히며 한참 달아오를 때였다. 나만 벼락거지가 될라, 그 역시 여느 개미처럼 투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낭패를 봤다.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조급한 마음에 다른 급등주로 옮겨 타다 보니 잔고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보통 주식 투자를 '심리 싸움'이라고들 하지만, 심리학 교수도 주식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뜨거운 맛을 직접 봤던 오 교수는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인간의 지각 능력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현실 세계와 주식 시장의 작동 원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른가? 그는 "투자자는 주가가 선형적으로 오를 때 앞으로도 주가가 같은 궤적으로 전개될 것이라 예측해 매수 버튼을 누른다"며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날아가는 공이 포물선을 그리는 것 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주식 안 하면 손해보는 '금융문맹' 사회

그렇다면,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주식, 안 하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가 주식 같은 '도약의 기회' 없인 남들보다 뒤처지고 마는 세상이 됐다는 점이다. 자본이 덩치를 불리는 속도가 근로소득을 월등히 앞서게 되면서, 월급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이다. 땀 흘려 번 돈을 어딘가에 '베팅'해야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기술의 발전과 환경적 요인도 주식 투자를 부추겼다. 스마트폰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 보편화되면서, 걸어가면서도 주식을 사고팔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코로나로 인한 지루함을 주식으로 푸는 사례도 많다. 오 교수는 "손가락 하나면 주식을 바로 사고팔 수 있는 데다, 코로나로 재미를 획득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되면서 주식이 일종의 스포츠이자 도박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인플루언서(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의 파급력도 컸다. '가치투자 전도사'를 자처했던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금융문맹'이란 표현은 사람들의 도전 의욕을 부추겼다. 오 교수는 "1980년대 '엔돌핀 박사'로 불렸던 이상구 박사, '웃음 전도사'였던 황수관 박사의 사례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식투자도 하나의 신드롬이 됐다"고 설명했다.

당신은 이미 '빨간 막대'에 중독됐다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면 주식에서 손을 떼면 그만이지만, 이미 그 단계가 되면 주식의 중독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경우가 많다. 개미는 어쩌다 가끔 수익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 간헐적인 보상은 일반적인 보상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오 교수는 "도박하는 사람이 우연히 큰 행운을 맛본 뒤 계속 도박장을 찾는 것처럼, 개미 또한 상한가를 한 번 겪으면 황홀경에 빠진다"며 "이 경험이 주식 중독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개미가 가치투자보다 단기 투자에 몰두하는 이유도 지각심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사람의 뇌는 시간을 주관적으로 인지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시간은 빠르게 가고, 나쁜 일이 있을 때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개미가 조급하게 단기 매매에 나서는 것도, 버텨야 하는 시간은 느리게 가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스마트폰 또한 계획에 따른 투자보다 즉흥적인 투자를 유도한다"며 "스마트폰을 사용해 주식을 거래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거래빈도가 2배나 높다는 독일의 연구 결과도 있다"고 전했다.

오 교수는 "투자병은 코로나보다 심각한 불치병"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끊거나 혹은 돈을 다 잃거나 주식시장이 문을 닫아야 치유할 수 있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주식 투자의 긍정적 효과 만큼 그 위험성 또한 계속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 쓰는 순서
개미는 왜 실패하는가 (상) 한 달 간의 개미굴 체험 (하) 개미지옥을 벗어나려면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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