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10곳 중 8곳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간 경제단체들이 해온 설문 조사와는 전혀 상반된 결과다. 하도급 업체에 중대재해 발생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찬성 배경으로 풀이된다.
재단법인 경청은 연 매출 1억 원 이상의 중소기업 1,00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9.4%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고 4일 밝혔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0.2%에 그쳤다.
업종별로는 '도매 및 소매업'에서 찬성의견이 86.2%로 가장 높았고,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79.2%), 정보통신업(79%)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앞서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연구결과와 상반된다. 경총은 2020년 국내 기업 654개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는데, 응답 기업의 90.9%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당시 응답기업들은 법 시행으로 인해 사업주 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은 '중소기업'(89.4%)이라 응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총은 "중소기업의 경우 사업주가 경영활동을 직접 관장하고 있고, 평균 매출액도 5억112만 원 정도"라며 "법상 과도한 처벌로 인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인지 여부를 묻는 문항에서도 기존 연구와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중소기업의 84.5%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들어본 적 있다(47.2%)'거나 '어느 정도 알고 있다(37.3%)'고 답했고, '모른다'는 응답은 15.5%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기업 실태'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68.7%가 법을 이해하지 못해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경청 조사에서 유독 중대재해처벌법 찬성이 높았던 건 조사대상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시 원청뿐 아니라 하청업체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는데, 혹여나 원청에서 책임을 회피할 경우 하청업체만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한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가 하도급 업체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44.7%)', '사업주가 실질 운영하는 사업장 내 안전의 엄격 관리 및 안전보건 분야 투자 촉진을 위해(22.5%)' 등을 꼽았다.
반면 반대 의견을 낸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법 준수를 위한 예산·전문인력·전담조직 확보가 어렵다(30.9%)'와 '고의나 과실이 없는 재해도 책임자 처벌이 과도하다(25.3%)'는 점을 꼽았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필요사항을 묻는 질문에 '고의 중과실이 없는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 규정 마련'을 가장 높게 꼽았다. 찬성 측에선 '경영책임자 의무 및 원청의 책임 범위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한편 재단법인 경청은 중소기업 기술탈취 및 권리침해 피해구제를 위해 활동하는 공익재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