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외도 탓" "연인 관계"... 스토킹범죄 황당한 봐주기 사유

입력
2022.10.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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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만 기소 95건 전수분석
징역형 16%에 불과... 집행유예·벌금 60% 달해
구속 후 '합의 종용' 편지가 오히려 참작 사유로
"연인·부부 스토킹범죄는 참작" 잘못된 시각도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생각해야"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에게 실형이 내려진 판결이 6건 중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선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절반을 넘은 것을 두고 "피해자보다는 가해자 사정만 과하게 참작한다"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3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스토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 95건을 대법원에서 받아 전수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전체의 60%에 달했고 징역형은 16%에 불과했다. 다른 혐의가 포함되지 않고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된 사건을 전수분석한 결과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스토킹처벌법은 지난해 4월 제정돼 같은 해 10월 21일 시행됐다. 과거 스토킹범죄는 경범죄로 처벌받았지만, 살인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의 전조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뒤늦게 법이 만들어졌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가해자는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는다. 범죄 당시 위험한 흉기를 소지했다면 징역 5년 또는 벌금 5,000만 원 이하로 형량이 늘어난다.

법조계에선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이유로 가해자에 관대한 판사들의 인식을 지적한다. A씨는 지난해 10월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여성이 원치 않는데도 수차례 연락하고 접근했다가 구속기소됐다. 그는 구속 당시 여성에게 "내가 희생하면서 스마트워치 준 거 같아 마음의 안심이 된다" "당신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열흘 동안 3차례나 보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그러나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내용이 피해자와의 합의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 실형 대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합의 종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을 오히려 가해자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것이다.

"연인 또는 부부 사이의 스토킹범죄는 참작할 수 있다"는 시각이 깔린 판결도 있었다. 서울서부지법은 올해 1월 ①스토킹처벌법 시행 6개월 전부터 헤어진 연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②법 시행 이후 4일간 100회 이상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고 ③접근금지 조처를 받고도 버스에서 내리는 피해자를 찾아간 B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와 10년 전부터 교제를 해왔다"는 사실이 양형에 참작된 것이다.

법원은 심지어 "이혼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며 부인의 차량에 번개탄을 가져다 놓고 50여 차례 전화한 C씨에게 "피해자의 외도를 알게 됐다는 범행 동기를 이해할 만하다"며 벌금 200만 원 선고에 그치기도 했다.

재범 위험을 우려한 구속 또는 구금이 되레 감형 요소로 작용할 때도 있었다. 인천지법은 올해 4월 옛 연인에게 200회 가까이 메시지를 보내고 접근금지 조처를 위반한 D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D씨가 잠정조치 위반으로 구금되는 동안 다시는 연락하거나 접근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실형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

스토킹처벌법의 맹점으로 꼽히는 반의사불벌죄로 인한 공소기각도 4건 중 1건이나 됐다. 스토킹처벌법에선 피해자가 재판 도중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면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처벌 불원으로 재판을 끝내려고 합의를 종용하는 '합의 스토킹'이 횡행하는 이유다. 정치권은 전주환이 직장 동료에게 합의를 요구하다가 살해를 저지르고 나서야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나섰다.

법조계에선 판사들이 기계적으로 가해자 사정만을 참작하지 말고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가해자의 합의 요구나 연인 관계였던 점을 참작하는 건 스토킹범죄로 인한 강력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탄희 의원은 "징역형이 6건 중 1건밖에 안 된다는 것은 법원이 가해자에게 선택적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라며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