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4개 지역 병합을 선포하는 무대가 차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 땅을 지킬 것”이라며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핵무기를 사용한 선례를 남겼다”고 노골적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 장면을 두고 “세계가 쿠바 이후 최악의 핵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 정확히 60년 전인 1962년 10월, 미국이 쿠바에 설치된 소련의 핵미사일을 탐지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다. 존 F. 케네디 당시 미 대통령은 쿠바섬을 봉쇄하고, 핵전쟁을 각오하는 초강수를 선택한다. 결국 소련은 쿠바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했다. 60년 전 핵 위기는 해피엔딩이었으나, 이번엔 다른 점이 있다. 당시는 핵무기 자체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러시아 점령지가 걸려 있다. 또 60년 전과 달리 러시아는 국지적으로 사용 가능한 ‘전술핵’을 2,000기가량 가지고 있다.
□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전술핵 사용 선택지는 세 가지다. 우선 흑해나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폭발해, 인명피해는 피하면서 전자기 펄스로 우크라이나 군 전자 장비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낙진이 인근 국가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군사시설 공격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은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최강수는 우크라이나 도시를 공격하는 것인데, 이는 나토 개입을 불러 러시아에 재앙이 될 것이다.
□ 푸틴이 전술핵 사용을 선택한다면, 역풍을 각오할 만큼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힘의 균형이 핵무기 사용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며, 그래서 무책임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미 역사학자의 의견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쿠바 위기를 다룬 고전 ‘결정의 본질’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의 말을 인용한다. “지도자가 수모를 당할 궁지에 몰린다면,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수 있다.” 핵 위협이 버릇이 된 독재자를 이웃에 둔 우리나라 위정자들도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