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역수지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2일 올해 말까지 가면 그 규모가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보냈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까지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정부가 당장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9월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수출은 574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늘고 수입은 612억3,000만 달러로 18.6% 증가해 37억7,000만 달러(약 5조4,213억 원)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9월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88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는데, 이는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1996년(206억 달러)보다도 82억 달러 많은 수치다. 반년 동안 계속 무역 적자를 기록한 건 25년 만이다.
특히 그동안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수출 증가율이 6월부터 넉 달 연속 한 자릿수에 그치며 성장세가 꺾이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5.7% 줄어든 114억9,000만 달러로 집계되는 등 주요 품목의 수출 추이가 심상치 않다.
반도체와 더불어 석유화학 제품 수출도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전방 산업 수요 감소, 공급 과잉 여파로 지난해보다 15.1% 감소한 40억7,000만 달러에 그쳤고, 일반기계(40억1,000만 달러), 디스플레이(17억4,000만 달러) 수출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5%와 19.9% 줄었다. 철강은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시장의 수요가 줄고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포항제철소가 멈추는 변수까지 맞물리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1% 줄어든 26억9,000만 달러에 그쳤다.
심지어 올해 연간 무역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자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에 장단기 대책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경연은 이날 "올 하반기에만 374억5,600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 연간으로는 4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경연이 2020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의 무역수지를 수출입 물량 요인과 단가 요인으로 나눠 살핀 결과, 물량 측면에서는 흑자를 보였지만 수입 단가 상승폭이 수출 단가 상승폭을 크게 웃돌아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이 예측한 수치는 앞서 전경련이 자체적으로 전망한 281억7,000만 달러보다도 약 1.7배 높은 수준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현재 무역수지 적자는 높은 수입 물가가 큰 영향을 끼쳤다"며 ①해외자원개발 활성화 등 공급망 안정과 ②해외 유보기업 자산주의 국내 환류 유도 ③주요국과 통화 스와프 확대 등 환율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법인세 감세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 세제 개편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급증하고 있는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무역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수출 진흥 확대 정책을 펴 기업을 독려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