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猪木寬至)의 필살기는 ‘엔즈이기리(延髄斬り)’였다. 우리말로 ‘연수베기’라 부른다. 연수는 촉수 뒷목덜미에 있는 급소. 190㎝의 큰 키와 잘생긴 얼굴에 긴 턱, 115kg의 거구가 점프해서 발등으로 상대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가 직접 개발한 기술이다. 또 하나는 ‘만지카타메(卍固め)'. 한쪽 다리로 상대의 다리를 옭아매고, 자신의 나머지 다리를 상대 목에 걸면서 상대의 한쪽 팔을 겨드랑이로 조이는 테크닉이다. 문어가 감싸는 것처럼 보여 ‘옥토퍼스 홀드’로도 불린다.
□ 그는 특유의 쇼맨십으로 흥행을 몰고 다녔다. 1976년 도쿄에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벌인 ‘세기의 대결’은 14억 명이 TV로 지켜봤다. 이노키는 시종일관 누워서 알리의 다리에 킥을 시도했고, 알리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해 ‘세기의 졸전’이 됐다. 알리가 “누워서 돈버는 놈은 창녀와 이노키밖에 없다”고 하자, 이노키는 “누워있는 창녀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라고 응수했다. 이노키는 훗날 로프터치나 그레플링(상대를 잡아 던지는 것), 허리 위 타격 등이 금지돼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토로했다. 압도적으로 유명한 알리 쪽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그의 유행어는 “겡키데스카!(元気ですか·건강합니까)”였다. 정계진출 후 국회 발언 때도 이 말부터 시작했다. 큰 목소리로 갑자기 외쳐 의원과 각료들을 깜짝 놀라게 한 뒤 “원기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원기가 있으면 질문도 할 수 있다”고 반복한다. 긴장한 여야 의원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기 마련이다. 그의 선거구호에는 “국회에 만지카타메!” “소비세에 엔즈이기리!” 등 주로 레슬링 용어가 동원됐다.
□ 1970년대 김일과 명승부를 펼친 이노키가 1일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박치기 왕 김일, 괴력의 거구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의 3대 제자”였다. 스승 역도산의 고향인 북한을 자주 방문해 일본에선 꺼리는 ‘친북인사’였다. 투병 중인 김일의 말년을 문병하는가 하면 경기 광주 ‘나눔의집’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 방문 한 풍운아이자 ‘의리 있는 사나이’가 이젠 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