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인줄...' 연출 없는 리얼 승부의 스포츠 예능

입력
2022.10.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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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 1만6,000명의 관중이 고척스카이돔을 가득 메웠다. 올해 고척돔 최다 관중 기록이다. 전 프로야구 선수 김선우, 이승엽이 시구자, 시타자로 그라운드에 올라서자 경기장의 함성 소리가 더욱 커진다.

한국시리즈급 경기인가 싶지만 실은 예능 프로그램을 녹화 중인 상황이다. 이날 경기는 JTBC 예능 '최강야구'가 마련한 것(9월 26일 방송)으로 은퇴한 선수들로 구성된 최강 몬스터즈와 U-18 청소년국가대표 간 맞대결이 펼쳐졌다. 예능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녹화 직관'이 열린 것이다.

장시원 '최강야구' PD는 "스포츠 특성상 스포일러 부담이 있었지만 3회 정도 나갔을 때 직관 문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와서 고민 끝에 준비하게 됐다"며 "그래도 얼마나 오실까 싶어서 처음에 5,000석만 준비했는데 너무 빨리 매진돼서 결국 외야까지 열게 됐다"고 밝혔다. 5,000석을 마련한 1차 티케팅은 1분 만에, 6,000석을 준비한 2차 티케팅은 10분 만에 전석이 매진됐다.


"성장하는 모습 응원하며 보게 돼"...리얼해진 스포츠 예능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포츠가 자주 예능과 접목되긴 했으나 스포츠 예능이 이렇게까지 리얼해진 건 최근의 변화다. 시청률 7%대를 기록하며 11주 연속 수요 예능 1위를 달리고 있는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 포문을 열었다. 종영한 tvN의 '전설이 떴다 <군대스리가>'나 JTBC의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도 유사한 포맷으로 진행됐다.

'최강야구' 제작진은 이승엽이 감독을 맡은 최강 몬스터즈 팀이 예정된 30경기 중 10경기를 지면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실전 경기와 다를 바 없는 리얼한 승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골때녀'의 경우 여성 축구라는 설정도 신선했지만 출연진이 매번 진짜 경기처럼 열과 성을 다해 뛰어 주목받았다. 예능임에도 개그맨, 가수, 배우 너나 할 것 없이 웃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축구를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만 보여준다. '골때녀'와 '최강야구'를 챙겨보는 30대 직장인 A씨는 "순수하게 어딘가에 미쳐 있는 사람을 보는 재미가 있다"며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하면서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골때녀'가 인기를 끌면서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다. 박성훈 '골때녀' PD는 "이전까지의 공익 예능이 캠페인성 내용을 담거나 정보를 환기시켜 주는 형태로 존재해 왔다면 '골때녀'는 남자의 스포츠, 여자의 놀잇감이 구분돼 있다는 인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편파 판정, 조작 논란도 잇따라

스포츠와 예능의 동거에 따르는 위험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예능에는 제작진의 설정과 연출, 편집이 가미된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승부와 공정한 경쟁이 매력인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능에서 의도적인 연출을 위한 제작진의 개입은 독이 되기 십상이다. '재미를 위해서', '예능은 예능으로 봐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JTBC '뭉쳐야 찬다'에서 출연진이 '장난처럼' 축구를 했다가 시청자의 항의가 빗발쳤던 게 단적인 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주말 저녁 아이들과 함께 보는 방송에서 반칙이 난무하고 편파판정으로 승부를 조작했다"며 프로그램 폐지 청원까지 올라왔다. '골때녀'도 지난해 12월, 경기를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득점 순서를 실제와 다르게 편집해 내보냈다가 홍역을 치렀다. 한 차례 결방하며 제작진이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논란 이후 첫 방송에서 시청률이 2%포인트가량 하락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엘리트 스포츠를 강조하던 때에서 생활체육 시대가 열리면서 스포츠는 세대를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됐다"며 "기존 예능 속 스포츠가 재미를 위해 쓰였다면 이제는 리얼리티를 살려서 예측할 수 없는 실제 경기를 한다는 게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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