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격투기 단체인 ‘라이진(RIZIN) 파이팅 페더레이션’의 사카키바라 노부유키 최고경영자(CEO)가 문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30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뒤 15초 동안 고개를 숙여 절했다. ‘도게자(土下座)’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적 사과 방식이다. 과거엔 ‘당장 이 자리에서 내 목을 쳐도 된다’는 뜻의 극도로 굴욕적인 사죄로 통했다.
사카키바라 CEO가 큰절 사과를 한 건 지난달 25일 일본 사이타마시에서 열린 ‘초(超) 라이진’ 경기에서 있었던 ‘꽃다발 내동댕이 사건’ 때문이다. 당시 주최측은 미국의 전설적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일본의 이종격투기 선수 아사쿠라 미쿠루의 경기를 앞두고 ‘NFT 티켓’을 만들어 경매에 붙였다.
가장 높은 금액을 입찰한 사람에겐 메이웨더에게 직접 꽃다발을 주는 기회가 돌아갔다. 최고 입찰금액은 420만 엔(약 4,180만 원)이었고, 낙찰자는 오쿠노 다카시 ‘우엉의 당’ 대표였다. 우엉의 당은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신생 정당.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로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다.
사고는 시합 직전 벌어졌다. 오쿠노 대표가 메이웨더의 면전에서 갑자기 꽃다발을 링 바닥에 던져버린 것이다. 경기장은 일순 얼어붙었고,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메이웨더는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담담히 꽃다발을 주워 스태프에게 건넨 뒤 아사쿠라와 경기해 2회 KO승을 거뒀다.
오쿠노 대표의 비신사적 행위에 "일본의 수치"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해외 언론도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인종 차별을 한 것이냐"는 지적도 있었다. 사카키바라 CEO는 경기 후 메이웨더를 찾아가 사과했다. 큰절 사과까지 한 데 대해 그는 “일본뿐 아니라 외국인도 이해하기 쉬운 일본의 전통적인 방법을 통해 최대의 경의와 사과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쿠노 대표는 왜 무례하게 굴었을까. 그는 "돈만 밝히고 상대 선수에 대한 예의가 없는 메이웨더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다"고 인터뷰 등을 통해 주장했다. 2018년 일본의 격투기 선수인 나스카와 텐신과 맞붙었을 때 메이웨더는 긴자에서 쇼핑을 하다 경기에 한참 지각했다고 한다. 오쿠노 대표는 또 "메이웨더가 내가 꽃다발 증정자로 나선다는 것을 알고 '우엉의 당을 선전해 줄 테니 1,000만 엔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스스로 별명을 '머니'로 지었을 정도로 메이웨더가 돈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메이웨더를 탓하기보다는 오쿠노 대표가 인지도가 낮은 우엉의 당을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메이웨더는 지난달 28일 인스타그램에 짧은 문장을 올렸다. “나는 내 인생에서 태도와 논쟁이 아닌 평화와 평온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