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파워엘리트

입력
2022.09.30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검찰·언론·관료 집단을 부유층·기득권층의 2세들이 차지했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대표적 인물로 지목했다. 지난 대선 패배 이유를 논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당대표 시절(2018~2020) 당정협의를 하면서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면서 "들어 보니 강남3구, 특목고, SKY 대학 출신들이 공무원 사회 주류를 이루게 됐다더라"고도 했다. 대담 형식의 회고록에서 대담자를 맡은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도 "대선 과정에서 서울 법대 출신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카르텔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는 언론계 인사의 말을 전했다.

□ 이 전 대표의 저 발언엔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의 대표작 '파워엘리트'(1956)가 어른댄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다니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그는 인문사회 서적 출판·기획에 종사하며 밀스의 또 다른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1959)을 공동 번역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1980~82년 수감됐을 때 아내 김정옥씨에게 보낸 편지엔 '개인의 삶-사회구조-역사의 흐름'이란 3요소로 기본틀을 짜서 사회를 분석하는 밀스에게 깊이 공감한다고 적었다.

□ '파워엘리트'는 당대 미국 사회 권력구조의 최상층을 이룬 자들의 출신과 행태를 정치·경제·군사 영역에서 파헤친 역작이다. 밀스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 같은 출신에 같은 교육을 받고 비슷한 경력과 생활양식을 갖춰 심리적·사회적 동질감이 높다는 점. 둘째, 제도화된 기구를 이익 추구와 상호 교류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점. 셋째, 영역별 상층그룹이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공생을 지속한다는 점.

□ 한 장관은 이 전 대표 회고록이 발간되자 "이 나라의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고 응수했다. 양측의 대립과 관련해 '파워엘리트'에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19세기 첫 사반세기엔 미국 정치 엘리트의 63%가 하원 의원 경력을 거쳤지만 1950년대엔 그 비율이 14%에 불과하다는 것. 밀스는 "새로운 정치 엘리트 멤버들은 선거보다 임명에 의해 그 지위에 오른 사람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