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조금과 한미동맹은 별개다

입력
202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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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 간 만남에서 전기차 보조금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데 대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잘 챙겨보겠다'고 했다. 두 가지 표현 모두 정치적 레토릭인 만큼 결과는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정치권에서는 한국업체에 대한 전기차 보조금 제외 문제를 한미관계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의 균열이나 대미외교의 실패로 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감축법에 담긴 함의는 좀더 복잡해 보인다. 퍼즐을 푸는 열쇠 중의 하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표방하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산층 외교정책'은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2018년부터 3년에 걸쳐 펴낸 방대한 보고서에 담겨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콜로라도, 네브래스카, 오하이오 등 3개주를 콕 찍어서 사례연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하나같이 워싱턴과 뉴욕의 정책결정자들, 특히 민주당 진영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지역들이었다. 콜로라도는 열성 진보와 극렬 보수 커뮤니티가 광범위하게 공존하는 지역, 네브래스카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희생된 산업을 중심으로 이민자들이 몰려있는데도 공화당 투표 성향이 높은 지역이다. 오하이오는 더욱 흥미롭다. 1964년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오하이오에서 승리한 후보는 예외없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을 앞둔 외교정책 설계과정에서부터 국내정치적 요인이 심각하게 고려되었다는 방증이다.

연구팀은 이들 3개 주의 지역사회 지도자, 소상공인, 노조 간부, 중산층 근로자들과 수백 건의 인터뷰를 수행했다. 광범위한 작업을 거쳐 내린 결론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정작 미국 중산층의 삶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 외교가 예산만 잡아먹는 전쟁을 끝내고 중산층에게 도움이 될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 결정자들의 가장 큰 임무를 국내 경제의 회생과 복원으로 못박은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외교문제와 국내문제의 경계를 인정하기보다는 이들을 연계하고 통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외교가 곧 국내정책이고 국내정책이 곧 외교"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올해 연두교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항공모함 갑판에서 고속도로 가드레일 철강재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국 제품을 구입할 것"이라고 대놓고 강조한 데는 이런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며 옹호했다. 그러나 같은 법안에서 석유사업자들에게 부과하기로 했던 메탄가스 수수료를 일부 면제해주기로 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국업체에 대한 보조금 차별이 기존 무역협정을 위반한다는 비난에는 '지구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응수했다. 미국에서 조립된 전기차만이 어벤저스처럼 지구를 위한 복수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일까?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는 데 대해 동맹국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자국 제조업에 대한 최대한의 지원을 통해 '러스트 벨트'라는 인식의 뿌리를 뽑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러스트 벨트'야말로 트럼프라는 괴물을 당선시켰던 토양이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