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많이 배우고 갑니다"

입력
2022.10.01 10:20
청송 떠나는 야구 바보 이영욱 감독
야구 불모지 청송에서  아름다운 도전 마무리

부임 초 학부모"우리 아이 야구 그만두게 해주세요"이감독 "6개월만 시간 주시면 그만두게 할 것"
혹독한 훈련에도 어린 선수들 "야구 계속 할래요"

9월30일 부산 기장군 현대드림 파크 구장에서 막을 내린 U-15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를 끝으로 이영욱 감독은 진성중 야구팀의 지휘봉을 놓게 되었다.

이영욱 감독은 투수로 활약한 SK 와이번스 시절 한국 시리즈 제패라는 영광까지 안았던, 프로 야구 경력만도 13년이다. 결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야구 이력을 가졌지만 야구 바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수식어를 가진 이유는 경북 청송군 진성중 감독 시절의 행보에서 비롯됐다.

이 감독은 2017년 진성중 야구부 감독에 취임하면서부터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큰 이유는 진성중이 경상북도 청송군에 위치해있기 때문이었다.

청송군은 경상북도 중동부에 위치해있으며 2만4,000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전체 거주민이 삼성 라이온즈 볼 파크의 수용인원과 딱 맞아 떨어질 정도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지난 2001년에는 21세기에 호랑이가 사는 동네로 알려져 유명세를 치렀던 고장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일반적인 도시와는 다른 이미지와 특징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낮은 출산율로 인한 학생 수 부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느 지자체도 피해갈 수 없는 인구 절벽의 상황은 청송도 예외일 수가 없다.

이처럼 미니 마을 청송에서 야구부가 창단되고 이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금에서야 털어놓지만 당시로서는 속앓이밖에 할 수 없었던 사연은 바로 이 감독 스스로가 야구부에 들어온 아이들을 자발적으로 나가게 하는 일이었다. 야구 부원 1명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야구를 하겠다고 제 발로 청송까지 찾아온 아이들을 6개월 안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부모들과 약속까지 한 일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을 일이었다.

인근의 포항, 경주 등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야구팀이 이미 지역 터줏대감이 되어 있다. 부산, 대구 등 대도시의 야구부는 선수가 넘쳐나 고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신생팀이자 중소 도시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소도시 혹은 시골의 야구부는 선수 유치가 야구부 존속을 넘어 학교 존폐의 갈림길이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선수 유치는 전쟁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감독은 이곳 진성중 선수들 가운데 다수가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에 와서 야구를 시작, 훈련량, 경기 경험은 물론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임을 파악했다.

이 감독은 "첫해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찾아왔다. 고마운 일이긴 하나 기량 테스트를 하고 나니 눈앞이 막막했다. 아이들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있었지만 기량을 테스트해보니 야구는커녕 운동하다 사고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야구 감독 입장에선 눈 딱 감고 일정 수의 팀원을 유지하는 게 맞겠지만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야구가 아닌 다른 재능을 찾아 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용기를 내어 어렵게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 감독은 "처음에는 아이들의 야구 실력을 보고 놀랐고, 두 번째는 맞죠! 감독님 우리 아이는 야구할 소질이 없죠라는 부모님들의 반응에 또 한번 놀랐다"고 한다.

그때부터 부모님들의 속내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야구하지 말라고 몇 차례나 말을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 단식투쟁을 하는 아이, 문 잠그고 농성 아닌 농성을 하는 아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이때부터 이 감독과 일부 부모들 사이에 작전을 벌였다.

이 감독은 그렇다면 아이를 6개월만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요구했다. 이 감독은 평소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겠지만 엘리트 운동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것이라 밖에서 보는 것처럼 재미있고, 멋있지만은 않다. 정상에 서기까지 피나는 노력과 인내,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의 말처럼. 정말 야구가 아니면 안 되는 아이들인지, 그 말의 무게를 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므로 6개월만 맡겨달라고 했던 것이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매개체가 되어 이 감독과 아이들은 6개월짜리 짧은 연을 맺게 되었다.

시작은 예상대로였다. 지금까지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던 아이가 기숙사 생활의 낯설음과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으로 인해 첫 달에만 20%가량이 야구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을 때는 30%의 학생들이 힘든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절반의 아이들이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라운드에 서면 '야구선수' 같은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이 감독은 아이들이 훈련을 견디고 남으리라고 생각 못했다. 지금의 아이들은 6개월 전 야구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던 그 아이들 진심이었던 것이다.


이 감독은 "SK시절 김성근(79) 감독 밑에서 야구를 배웠다. 그분께 어떠한 상황에서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야구 앞에서 겸허하고, 야구에 대한 감사함을 항상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을 배웠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진성중 창단 멤버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이 감독은 "우리 아이들이 야구를 늦게 시작해서 당장은 실력이 뒤쳐질지는 모르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다”며 "혹독한 훈련을 극복하고 끝까지 야구를 하겠다고 온 아이들이라며 운동시작을 늦게 한 것뿐이지 재능이나 능력면에서는 절대 뒤처지지 않는 선수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경주고에서 홍준영(18) 투수와 쌍두마차로 팀을 이끌고 있는 이승현(18) 투수가 있는데 야구선수로는 대학에 진학하는 자신의 첫 제자라고 했다.


이런 이 감독과 선수들의 열정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와 대한민국의 낮은 출산율 0.808(2021년 기준)에는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나 보다. 진성중 야구부는 현재 3학년이 7명, 2학년 4명, 1학년 1명 등 모두 12명이다. 팀을 정상적으로 꾸려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 감독은 코로나 19상황 속에서도 초등학교 야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인근 대구, 경북은 물론 전북 순창, 강원도 태백, 수원, 창원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21년 졸업생 배출 이후 채워지지 않은 인원 수급 문제로 인해 학부형들의 분담금이 가중되자 이 감독은 자신의 월급의 일부분을 내면서까지 팀을 이끌었다. 현재 3학년들의 진학과 저학년들의 전학까지 본인이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감독의 이 같은 노력으로 야구부원 12명은 모두 원하는 학교에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가 마무리된 상황이다.

이것으로 이영욱 감독의 청송에서의 아쉽고 불완전했지만 아름다운 도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감독은 지난 5년간 진성중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고, 진성중 선수들에게서 언제부터인가 잊고 살았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 그리고 감사함을 다시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도리어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고 했다.

(진성중 야구부는 2022년 10월1일 날짜로 신임감독 선임을 마쳤고, 새롭게 출발한다고 밝혔다.)

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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