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29일 대구를 찾아 "나라를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꼭 하겠다"며 당권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기간 중 비속어 사용 논란에 대해선 "지금 대통령실과 당의 대응은 잘못됐다"면서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갈 문제"라고 날을 세웠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보수 지지세가 강한 대구에서 두 달 만에 공개 활동을 재개하며 당권주자로서 존재감 부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유 전 의원은 이날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무능한 정치를 바꾸려면'이란 주제로 특강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서 한 가지 분명하게 결심한 게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 전 의원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여당 차기 당대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데 대해 "지금 윤 대통령과 정부, 국민의힘에 대한 신뢰가 너무 약한 상태"라며 "그런 부분이 저에 대한 기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수의 변화, 개혁보수로 정치가 바뀌는 부분에 대한 지지라면 가장 감사한 지지"라고 덧붙였다.
유 전 의원은 이와 함께 윤 대통령 발언 논란에 쓴소리를 쏟아내며 당내 주류 세력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는 "경제 문제로 먹고살기 힘든데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를 갖고 청력테스트를 하는 상황에 국민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며 "임기 초반에 중요한 시간을 이런 문제로 허비하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끝낼 일을 대통령실과 당이 정말 잘못 대응했다"며 "국민들을 너무 개돼지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거듭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강연 중에 '윤 대통령이 좋은 학교를 나왔는데 이렇게 할 줄 몰랐다'는 한 학생의 질문에 "이럴 줄 몰랐느냐"고 되물으며 "속인 사람 책임도 있지만 속은 사람 책임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추가 징계 움직임에 대해서는 "대통령 막말은 괜찮고 (양두구육) 사자성어는 안 된다는 것이냐"며 "윤리위가 추가 징계를 하는 건 너무나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도 내놨다. 그는 "당장은 치솟는 환율과 금리, 물가를 잡는 게 급한 일"이라면서 "한미 통화스와프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미국이 예정대로 추진할 경우 국내 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선 "지난 8월 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했는데, 당시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이 대구를 찾은 것은 지난 7월 9일 북콘서트를 갖고 이 전 대표 당원권 정지 징계를 주도한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후 두 달여 만이다.
한편 차기 당권을 노리는 당내 주자들도 연이어 대구를 찾으며 지역 민심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28일 조경태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대구에서 각각 기자간담회와 청년 대상 강연을 진행한 데 이어, 30일엔 김기현 의원이 대구에서 당원들을 대상으로 특별 강연을 예고했다. 당권 도전을 공식화한 안철수 의원도 지난 20일부터 이틀 동안 대구를 찾아 경북대와 서문시장 등을 방문하고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났다. 당내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는 TK(대구·경북) 지역을 확실히 다지는 것이 당권 '필승 전략'이라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