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민사소송 - '판사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말라

입력
2022.09.30 04:40
25면

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전편에 이어, 나홀로 소송을 하는 시민이 알아야 할 '판사의 마음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번 사례는 편의상 변호사를 등장시켰다. 판사의 생각을 추측하고, 그에 따라 소송 방향을 재정비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A아파트 옆에 외벽이 통유리로 된 초고층 건물이 신축됐다. 초고층 건물 통유리에 반사된 태양 빛이 아파트 집집마다 유입됐다. 주민들은 김총명 변호사를 선임해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첫 기일이 열렸다. 판사는 "빛 반사에 따른 피해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참을 한도')를 넘는지가 문제군요"라고 쟁점을 정리했다. '참을 한도'란 사회공동생활 과정에서 타인의 생활 방해가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 한도를 넘는다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수인한도론'이라고 하는데, 환경권 분쟁에 적용되는 대법원의 확립 법리이다. 판사는 시공사 측에 "외벽 통유리 반사율이 일반 유리보다 몇 배나 높던데, 주변 환경 피해는 검토하지 않았나요?"라며 질책하듯 말했고, 김 변호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다음 기일, 판사가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반사광을 직접 바라보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 않나요?"라고 묻더니, '커튼으로 반사광을 차단할 수 있지 않나?'라는 혼잣말도 했다. 김 변호사는 가슴이 콱 막혀왔다. 판사가 왜 그랬는지 밤새 고민한 끝에 '태양직사광' 침해, 즉 일조방해에 대한 선례를 적용하려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건물 신축으로 이웃의 일조권이 침해되어도, 동지(冬至)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8시간 중 4시간 이상의 일조시간이 확보되면 '참을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판례도 생각났다. 이 사건에 그 기준을 적용하면, 반사광 유입시간이 4시간 미만이므로 정상 일조시간은 4시간 이상이 되어 위법성이 없고, 반사광은 커튼으로 막으면서 참아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판사 마음을 읽은 김 변호사는 세 번째 기일에 '태양반사광' 피해는 '태양직사광' 피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주민들 승(勝). 판결문에는 "태양반사광은 인위적으로 축조된 건물 외벽에 의해 발생되는 왜곡된 빛이고, 자연의 빛인 태양직사광과는 발생 원인이 다르다. (중략) 더 적극적인 침습의 형태이므로 일조방해의 판단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고 기재되었다.

위 사례처럼 '참을 한도'는 추상적 개념이다. 구체화하는 법리가 존재하더라도, 판사의 법 해석·적용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나홀로 소송을 준비하는 시민이라면 '나의 생활 터전에서는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실생활에서 우러난 경험, 지식과 원리를 판사에게 충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판사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들으면서 변론기일에서 "말"을 한다. 판사의 심증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 판사의 말을 통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변론기일에 판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나에게 유리한 말인지, 불리한 말인지, 내 주장의 허점을 지적하고 있는지, 내 증거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는지 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기일 전에 판사가 궁금해하는 답변과 보고 싶어 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때로 판사가 상대방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불공정한 재판을 할 것 같다는 불안함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지레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판사가 불리한 말을 했다면 왜 그랬는지를 곱씹어 생각하며 해명할 궁리를 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소제인 법무법인(유) 세한 파트너 변호사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