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및 동거가구, 위탁가정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번복한 여성가족부의 '말 바꾸기'에 반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의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정부가 앞장서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여가부 스스로 입장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의 중심에는 '건강가정기본법'이 있다. 가족정책의 근간을 만들겠다며 2004년 제정돼 2005년부터 시행 중인 이 법은 처음부터 한계를 드러냈다.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협소하게 규정한 것부터 문제로 꼽혔다. 더욱이 명칭과 목적에서부터 '건강한 가정'을 규정해, 이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 가정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으로 치부되고,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혼인 및 혈연 중심의 가족‧가정 개념은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서 혼인·혈연·입양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형태 및 가정형태에 대한 차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시정을 권고한 건, 이 같은 지적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지난해 4월 여가부도 비혼 동거 커플, 아동학대 등으로 인한 위탁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변화의 의지를 드러냈었다. 법 이름도 더욱 가치중립적인 용어인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겠다는 데 찬성했었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 돼, 여가부의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지난 18년간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일거에 무너뜨린 여가부가 내세운 논리는 간단했다. "법적 가족 개념 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
하지만 이 해명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여가부는 '소모적 논쟁'이라고 밝혔지만, 가족 개념을 확대하는 데 이미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했다. 당장 2년 전 여가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도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데 동의하는 비율이 69.7%였다.
법적 기반 없는 실질적 지원은 성립되기 어려운 현실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현행법대로, 혼인과 혈연관계만으로 가족을 인정하는 한,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구성원들은 상대방이 수술을 하더라도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없고, 상속, 장례 등 생애 전반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차별을 여전히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6개 여성단체들이 "현재 협소하게 규정된 법적 가족 개념으로 인해 복지, 조세 제도 등에서 배제되어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26일 성명)고 꼬집은 이유다.
여성계에선 여가부의 갑작스러운 입장 번복을 두고 가족 개념 확대가 동성혼 합법화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와 보수 정치인을 의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9일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이 예상하듯, 여가부가 동성애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부분에 대한 논란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젠더나 성평등 이슈에서 퇴행적 행보들을 보이고 있는데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법은 18년 전 그대로지만, 국민들의 삶의 형태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다.
최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비(非)친족 가구원'은 101만5,100명을 기록, 집계한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비친족 가구는 일반 가구 가운데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를 말하는 것으로, 친구끼리 살거나 결혼하지 않은 동거 가구, 현행법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동성(同性) 부부 등이 포함된다. 핏줄을 나누거나 법률적으로는 얽히지 않은 '남남'이지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새로운 '패밀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