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 받는 스물셋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의 연주회. 힘찬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보니 교복 차림 학생도 있고 6070세대도 보였다. 사진으로만 봤던 가수 임영웅 공연장의 관객석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얼굴의 주름은 달라도 연주자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모두 닮았다.
'덕질'(한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파고드는 일)이란 게 그렇다. 생물학적 나이나 성별에 관한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틀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60대 여성을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고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의 이미지가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할머니의 덕질'은 치유이고 회복이다. 계간 '문학들' 2022 여름호에 실린 위수정 작가의 단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젊은 남자 피아니스트에게 빠진 주인공 '원희'를 통해 나이 든 여성의 삶을 잔잔하게 조명한다.
'원희'는 은퇴한 남편과 무탈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60대 여성이다. 대학시절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연주에 손을 놓았다. 그럼에도 내심 언제든 연습만 하면 손가락은 금방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새 환갑을 넘긴 자신의 나이가 영 어색하고 '할머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그다. 가끔은 셋째를 임신한 외동딸이 너무 일찍 아이를 낳은 것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다.
고요한 삶을 깨운 건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의 등장이었다. 친구를 따라 방문한 연주회에서 그의 연주에 매료됐다. 주인공을 끌어당긴 결정적 음악은 현란한 불협화음이 압권인 고주완표 버르토크(헝가리 음악가)였다. 할머니란 호칭도 역할도 모두 어색한 '원희'에게는 불협화음이 곧 자신의 존재와도 같았고, 그래서 일종의 위안이 됐을지 모른다.
주인공의 '덕질'은 나이와 상관없는 여성의 욕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 늙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연주회 뒤풀이 장소에서 "고주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원희'는 가슴이 뛰었"고, 한참 망설이다가 팬카페에도 가입한다. 고주완의 약혼자가 있는지도 궁금해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들이 사회적 환경과 부딪히면서 억압되거나 변형된다"는 작가의 말(단행본 '소설보다: 가을 2022')을 곱씹어보면, 그의 '덕질'은 자기 본연으로의 회복인 셈이다.
소설은 사회적 나이와는 불화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60대 여자의 쓸쓸함도 포착해낸다. 언제나 우아했던, 중학교 영어 교사 출신의 시어머니가 치매로 인해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원희'를 두렵게 한다. 나중에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 안락사도 괜찮지 않겠냐는 남편의 말을 "정신 차려요. 우린 아직 아니야"라고 끊어내고 입술을 깨무는 대목은 애잔하다.
'~답다'는 말은 참 무섭다. 60대 여성에게 주어지는 '~다움'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 어머니다움, 할머니다움, 혹은 노인다움을 강요하진 않았는지 돌아보니, 자신만의 '불협화음'을 안고 사는 이들의 모든 '덕질'을 응원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