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bak(대박), Mukbang(먹방), Hagwon(학원) Chimaek(치맥)…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들이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방탄소년단 등으로 K콘텐츠가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면서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담긴 어휘들이 그 자체로 영어권에서 유통되는 현상을 반영한 결과다. 글로벌 언어인 영어를 통해 우리말이 전 세계에서 쓰이는 데 대해 뿌듯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사전에 추가로 들어갈 한국어가 뭘까 생각하면 그저 ‘국뽕’에 취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장 올여름 외신을 장식했던 한국어는 ‘Banjiha(반지하)’였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려진 반지하 침수가 그대로 재현된 폭우 피해로 서울 지역의 열악한 ‘반지하’ 주거 형태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지난해엔 뉴욕타임스가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전하면서 선거 이슈였던 ‘내로남불’을 ‘Naeronambul’이란 영어 표기로 그대로 사용했다. 위선적이란 뜻의 hypocritical로 번역해도 무방했을 텐데, 한국 정치의 문제적 현상을 전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우리 대중문화가 큰 주목을 받으며 이뤄진 한국어 유통을 통해 우리의 치부 역시도 이제는 날것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아직 외신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미 글로벌 K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익숙한 또 다른 낯뜨거운 단어는 ‘Makjang’(막장)이다. 미국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Makjang drama’(막장 드라마)는 로맨스나 스릴러물처럼 아예 한 장르로 굳어졌다. 레딧의 K드라마 팬 모임은 막장 드라마를 보통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과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드라마로 극단적인 캐릭터와 상황 전개 등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출생의 비밀, 시한부 인생, 비정상적인 재벌 행태 등 통속적 욕망과 자극적 소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전개하는 막장 드라마조차 K팬들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작품성보다는 ‘씹으면서’ 보는 드라마여서 이들의 관심이 반가운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타고 막장 드라마들이 글로벌 흥행 조짐을 보여 조만간 ‘Makjang’이란 단어가 K팬층을 넘어 통용될 여건도 마련되고 있다.
조금 우려스러운 것은 ‘막장’이 한국의 대표 이미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반지하나 내로남불은 물론이고, 오징어게임의 극단적 설정이 막장 같은 한국 사회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부를 수 있어서다. 심지어 대통령조차 외교 현장에서 ‘XX’라는 비속어를 사용하다가 들켜 해외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까지 벌어지니, ‘막장’의 아귀가 척척 맞아 들어가는 모습이다. ‘XX’에 대해 외신은 ‘idiot’이나 ‘F--ker’ 등으로 번역했는데, ‘XX’라는 단어 역시 K팬층에 상당이 많이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구사한 그 ‘XX’가 한국어 그대로 세계에서 통용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까 정치가 K막장의 세계화를 이끄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