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2018년 트럼프에 "文 아닌 각하와 비핵화 논의 희망"

입력
2022.09.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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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저널', 당시 친서 27통 공개
김정은 "文 과도한 관심 불필요"
한미훈련에 "기분 상했다" 불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북미 대화가 한창이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협상 관여를 원치 않는다'는 의중을 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에서는 문 대통령과 웃으며 악수하면서 뒤에서는 '패싱'한 셈이다.

전·현직 주미 특파원들의 모임 한미클럽은 25일 외교·안보 전문 계간지 '한미저널'에 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4월~2019년 8월 주고받은 친서 27통을 공개했다. 친서를 보면 김 위원장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9·19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하고 이틀 만인 2018년 9월 21일 보낸 친서에서 "저는 향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지적했다.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은 철저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톱다운' 협상을 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친서 내용에 대해 "문 대통령의 서울 귀환보고를 보고 불신이 싹텄는지, 아니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환대하고 합의서를 만든 것이 속임수였는지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협상을 원하는 태도는 미 당국자를 상대로 한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가령 김 위원장은 같은 달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이 취소된 직후 보낸 친서에서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오 장관과 우리 양측을 갈라놓는 사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각하를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하자"고 설득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국면 전환이 반복되던 시기엔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해 8월 5일 보낸 친서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 실시를 거론하며 "저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고 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는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저를 주기만 하고 아무런 반대급부도 받지 못하는 바보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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