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지구인 건강도 지키는 자전거

입력
2022.09.25 22:00
27면

외래진료 중 무심하게 CT를 넘겨 보다가 놀란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환자분의 얼굴과 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대장암 수술 후 5년이 다 되어가는 환자였다. 이 정도의 시간이 무사히 지났다는 것은, 재발 위험이 거의 사라진 때가 됐다는 뜻이다. 다행히 CT에서 종양이 보여서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 나이대의 중년 남자의 배 안을 가득 채우는 시커먼 지방이 보이지 않고 대신 복벽의 근육이 튼튼해 보여서 놀란 것이었다. 환자는 자전거를 하루에 8시간 정도 탄다고 얘기했다. 암 수술 받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대오각성하여 술과 담배를 다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전거에 지불한 비용은 300만 원 정도였다. 나는 보호자로 서 있는 부인의 눈치를 살피며, 자전거치고는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환자는 그것보다 더 비싼 자전거도 널렸다면서, 하루에 만 원 정도를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 뭐 어떠냐는 호연지기를 드러냈다. 자전거 전용 헬멧, 의상, 장갑, 고글 등 안전 장비도 비싼 것이 많고, 심지어 자전거용 신발도 있다고 한다.

필자도 올여름부터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넘기다가 예쁘고 튼튼하게 생긴 자전거가 초특가로 나왔다는 '긴급' 광고를 보고 덜컥 인터넷으로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구매의 기억도 사라진 몇 주가 지난 어느 날에 배송이 되었는데, 집 안으로 들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포장을 뜯어보니 조립식 자전거였다. 놀랍게도 종이 한 장으로 된 조립 설명서는 모두 한자로 되어 있었다. 집에 옥편이 있을 리 만무하거니와 작은 글씨를 볼 수 있는 나이가 지나가는 시점이라 유튜브로 비슷한 형태의 자전거 조립법을 급히 익혀야만 했다. 어설픈 조립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렸는데, 밖으로 끌고 가서 타보니 자전거라기보다는 어수선함과 삐걱거림을 가진 '불완전한 금속 조합'이었다. 몇 번 타다 보면 부속이 다 떨어져 나가고 핸들만 내 몸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주는 내 자전거의 초특가 가격은 '겨우' 24만5,000원이었다.

필자의 집은 병원 근처여서 걸어서 출퇴근한다.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이 시간이 내 운동 시간의 거의 전부이다. 걷기가 가장 힘든 계절은 여름인데, 출근하여 씻기도 힘들고 번거롭다. 이런 여름에도 자전거를 슬슬 굴리면 큰 어려움 없이 출근할 수 있다. 일과가 아침 7시 회의로 시작하는 날에도 자전거는 수면 시간을 조금은 늘려주고 출근 시간을 단축해줘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실내 자전거를 타보기도 했었다. 발로는 페달을 돌리면서 정면에 세워 둔 모니터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내 몸으로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 본연의 재미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전용 도로에서 좋은 몸을 가지고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는 분들이 내심 부럽다. 하지만 그런 광폭한 속도를 내는 것은 내 무거운 몸과 삐걱대는 자전거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내가 타협한 자연스러운 자전거 타는 속도는 걷는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이다. 계절을 느낄 수 있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생각'이 가능한 속도. 아름다운 아침 노을과 때를 놓치면 쉽게 사라져 버리는 저녁 노을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계절이다. 지구와 지구인의 건강을 모두 지키는 속도.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