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25일 예정된 정부의 쌀값 대책 발표와 국회에 상정된 양곡관리법 처리를 압박하기 위한 차원이다. 정부는 그러나 양곡관리법이 "쌀 공급과잉 구조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농민들 반발은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농민들의 시위는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충남도연맹은 21일 천안을 비롯해 논산, 당진, 보령, 부여, 서천, 아산, 예산, 청양 등 9개 시·군에서 ‘논갈이 투쟁’에 나섰다.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은 김병수 천안농민회 회장은 "수확을 앞둔 쌀을 뒤엎는다는 것은 자식을 잃는 아픔만큼이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라며 "남아 있는 쌀을 자동 격리시키거나 수입용 쌀 방출을 제지하면 쌀값이 잡힐 텐데, 정부 대책이 없으니 가격이 계속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15일에는 전농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 100여 명이 함안군 가야읍에서 논을 갈아엎었다. 같은 날 전농 광주전남연맹은 전남도청에서 집회를 열고 '농가 요구 전량 정부 매입'을 촉구하며 농기계가 실린 화물차로 목포역까지 차량 행진 시위를 벌였다. 전남 해남에서 벼농사를 짓는 박민주(64)씨는 "농사 비용은 계속 오르는데 쌀값은 추락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식량주권까지 상실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근엔 쌀값 폭락에도 비룟값과 면세유, 인건비 등은 계속 오르면서 농민들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산지 쌀값은 20㎏ 한 포대에 4만725원으로 전년 동기(5만4,228원)보다 25% 정도 하락했다. 반면 지난해 한 포대에 1만800원이던 요소비료는 올해 2만 원대로 올랐다. 일손 부족으로 인건비도 지난해보다 최대 20%까지 올라 정부 차원의 특단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게 농민들 입장이다.
금시면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지난해 1리터에 600~700원에 머물던 면세용 경유 가격이 올해는 1,300원을 상회하고 있다"며 "경북도가 1년에 한 차례 벼재배 농가에 지급하는 특별지원금은 1㏊당 20만 원으로 수년 째 변함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농민들은 시장에 방출되는 수입쌀도 가격 하락 요인으로 꼽는다. 농림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에 따르면 지난해 밥쌀용 수입쌀 4만8,718톤이 공매입찰 물량으로 나와 4만3,138톤이 낙찰됐다. 쌀값이 폭락한 올해도 지난달까지 2만1,250톤의 공매입찰 물량 중 1만7,297톤이 낙찰됐다.
올해 이미 3차례에 걸쳐 쌀을 시장에서 격리한 정부는 추가 격리 방안을 25일쯤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쌀의 시장격리를 의무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림법안소위에서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임의조항인 쌀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바꾸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에 부정적 입장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는) 굉장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한영 농림부 식량정책관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매입이 의무화되면 쌀을 심으라는 신호를 시장에 주게 된다"며 "이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