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사정으로 한미 정상 48초 환담 그쳐
한일, 관계 개선 첫발 디뎠지만 '저자세 논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일본, 독일, 미국 정상을 차례로 만났다.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은 두 번째 다자외교 일정이다. 북핵,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보호무역주의 등 복합적 난국 속에 미일과 중요한 현안을 풀어야 할 자리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는 30분간 약식회담을 가졌다. 3년 가까이 중단됐던 한일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약식으로나마 재개된 점은 의미 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의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외교당국 간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고, 북핵 공조 강화에도 뜻을 모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정식 회담 없이 두 차례 만났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우리 자동차 업계의 우려를 설명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측 우려를 잘 안다. 양국이 진지한 협의를 이어나가자"고 답했다. IRA 관련 한국과의 협의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이다. 두 정상은 통화스와프를 포함한 '유동성 공급장치' 실행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반적 성과는 미진했다. 일본 외무성은 회담 후 보도자료에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쌓아온 우호 협력 관계'를 양국 관계 발전 토대로 언급했는데, 이를 두고 징용 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돼 더는 책임이 없다는 일본 입장이 재차 강조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과는 각국 정상이 즐비한 행사 석상에서 두 차례 환담한 게 전부로, 그중 한 번은 48초에 불과했다. 미국 측 사정으로 취소됐다지만, 회담이 반드시 이뤄질 거라던 정부 공언은 무색해졌다. 우리 측이 성과로 꼽은 IRA 협의, 통화스와프 협력은 백악관 성명엔 포함되지 않았다.
회동 과정의 잡음도 컸다. 한일 회담은 윤 대통령이 사전 예고 없이 기시다 총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비공개 진행되면서 '저자세 외교' 논란을 더욱 키웠다. 윤 대통령은 또 바이든 대통령과 환담을 마치고 행사장을 나서면서 미국 의회를 비속어로 지칭했다. 대통령실은 사적 발언일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대통령의 무신경한 언사가 빈약한 외교 성과마저 가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