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무슨 짓도 한다"... 핵무기 사용, '실제 상황' 될 수도

입력
2022.09.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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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통합성 위협하면 사용"… 전제 바꿔
헤르손 등 우크라 점령지 유지 목적
"전술핵 등 핵 위협,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협박용 제스처'로 일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엔 허풍이 아닐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존립 위협→영토 통합 위협…핵 사용 전제 확대

푸틴 대통령은 21일 대국민연설에서 "러시아의 영토 통합성이 위협받으면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가 핵무기 사용 전제 조건으로 "영토 통합성의 위협"을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러시아 군사교리는 적의 군사 공격으로 국가 존립에 위협이 생겼을 때에 한해 핵무기 사용을 허용하는데,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조건을 확대한 것이다.

러시아군이 차지한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러시아에 귀속시키려는 시도는 '영토 통합성의 위협'이라는 조건을 쌓아 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주(州)에선 오는 23~27일 러시아 병합 찬반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러시아 병합이 결정되면, 이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탈환 시도를 '영토 통합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최소한의 명분이 생긴다.

우크라이나는 영토 탈환을 멈추지 않을 태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에 대한 수복 작전을 취소할 계획이 없다"며 "우리 땅을 해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서방의 무기 지원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가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현재 전세가 계속되면 몇 주 안에 러시아군이 핵무기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망했다.

푸틴 최측근 "전략핵 사용 가능" 경고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은 이날 전략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서방 일각에서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한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우려하자 더 강력한 무기를 거론한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서 "새로 편입하기로 한 점령지를 포함해 러시아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전략핵을 포함한 어떤 무기든 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초 러시아군이 핵을 사용한다면, 전술핵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전술핵의 파괴력은 대체로 0.3~20킬로톤(kt·1kt은 TNT 1,000톤의 폭발력)으로, 100킬로톤이 넘는 기성 핵무기(전략핵)보다 위력과 사정거리가 수 배~수백 배 낮다. 전략핵을 쓸 때에 비해 본격적인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작다. 전술핵이 폭파 위력을 제한해 국지적 목표를 겨냥한다면 전략핵은 최대한의 폭파 위력으로 대도시나 공업단지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제사회 규탄…"승자 없는 핵 전쟁, 일어나선 안 돼"

미국 등 서방 동맹은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이 실제 상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최근 러시아의 핵 공격 대비책을 세우기 위한 자문단을 구성했다고 미 타임지는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전쟁은 승리 없는 전쟁이며 결코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독일, 영국 등도 일제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푸틴 대통령을 규탄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말자는 신중론도 나왔다. 알렉산더 드 크루 벨기에 총리는 "불난 집에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며 침착한 대응을 촉구했고,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도 "침착하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했다. 1970~1997년 미국의 모든 핵 확산금지조약 체결에 참여한 토머스 그레이엄 전 외교관은 "푸틴은 압박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며 "핵 위협이 전략에 불과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