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죽음이란 영원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다음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죽음 뒤의 세상이 이야기되지만 사실 그 실체를 현실로 보여준 일은 없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길은 늘 낯설고 속도를 낼 수 없지만 익숙한 길은 편안하게 갈 수 있듯이 경험에 의존하는 인간의 속성상 경험하지 못한 사후세계를 맞이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겹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에 대한 해석을 각 나라와 민족마다 처한 환경에 맞게 세우며 살아간다.
우리 민족에게 죽음은 망자를 보내는 긴 의식으로 치러진다. 망자가 죽기 전 새 옷으로 갈아입고 그 마지막 때를 바라보는 것을 임종이라 하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과정이기에 그 떠나는 영혼에게 인사를 하고 혹여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지 죽은 이의 겉옷을 들고 나가 휘저으며 복을 외치고 이름을 부르는 초혼제는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우리 곁을 떠나셨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의식이다. 그 후 망자를 잘 모시고 가라는 의미로 저승사자에게 상차림을 준비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 3일 또는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상례를 치르게 되는데 이는 이웃 마을에까지 망자의 소식을 전하는 시간을 고려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찾아온 하객들은 술과 음식을 나누며 흠뻑 취하는데 이는 죽음을 희화함으로써 도리어 헤어짐의 슬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죽음 맞이의 방법으로 전한다.
상주와 가족들은 묘지를 정하고 상여에 곡을 하며 망자를 떠나보내는 장례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년 제사를 지내며 죽은 이를 기리기를 3년 채우는 과정을 통해 망자와의 헤어짐 절차가 진행된다. 지속적인 제사를 통해 망자를 기억하고 그분께서 함께했을 때를 감사한다. 조선시대의 묘는 토지소유권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묘를 쓴 곳으로부터 삼각형을 이루는 땅의 소유권한이 그 묘 주인에게 있었다. 그러기에 부모의 묘를 잘 쓰고 그곳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아마도 삼년상이라는 전통의식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 기간 부모의 묘에 다른 송사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키는 의미가 동시에 있었다고 보인다.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우리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사뭇 긴 시간의 예절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는 슬픔을 희화하는 미학적 해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가 어쩌면 슬픔의 절규보다도 더 진한 메시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와 함께했던 한 사람의 죽음을 또는 그 집안의 슬픔과 함께하는 방법. 우리 조상들이 택해왔던 방법은 참으로 진지하면서 해학적이었음을 되새기게 된다.
지난 20일 전 세계인의 조문 속에 영국 여왕이 이 세상과 이별하였다. 나라마다 망자를 보내고 애도하는 방법이 있겠고 그 예절을 따르겠지만 우리 민족에게 전해져온 망자를 향한 애도의 방법과 정신이 이번 조문 과정 안에 잘 녹아 있었기를 바란다. 주인집의 관례를 따르되 내가 알고 있는 상례를 향한 가장 값진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또한, 망자를 대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 전하기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마음은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표출될 때 상대방에게 울림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부부는 개인 자격이 아닌 대한민국 대표 조문객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