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하기로 하고, 초안을 20일 공개했다. 원전을 친환경 산업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넣지 않았던 환경부가 폐기물과 안전성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친원전’ 정권이 출범하자 9개월 만에 정책을 뒤집어 논란을 자초했다.
유럽연합(EU) ‘그린 택소노미’의 한국판인 이 체계에 포함된 경제 활동들은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은 이를 지침 삼아 투자한다. 초안은 원전 안전과 신뢰도 향상 핵심기술 연구개발을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으로, 설비 구축과 운영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도기 활동으로 분류했다.
문제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분장 확보 시점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린 택소노미는 2050년까지 구체적인 고준위 방폐물 처분 계획을 내놓는 조건으로 원전을 포함시켰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확정된 고준위 방폐물 관리기본계획을 따를 거라고 설명했지만, 해당 계획에도 구체적인 처분장 위치나 가동 시기는 없다. 올해 당장 부지 선정에 착수해도 2060년에야 운영이 가능하니, 유럽보다 10년은 더디다. 중대사고 때 건전성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ATF) 사용 시점은 2031년으로 제시됐다. 유럽보다 6년이나 늦다.
처분장 부지 선정부터 예상되는 난관, 상용화가 먼 ATF 기술 단계를 감안할 때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원전 활용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폐기물과 안전 대책이 불충분한 K택소노미는 친환경인 척 위장하는 ‘그린 워싱’과 다름없다.
민감한 정책을 바꾸면서 사회적 합의나 공론화도 부족했다. 환경부는 “각계각층 의견을 추가로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면서도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뒤늦은 의견 수렴마저 형식적일 거란 예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