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재발 방지책으로 지하철 역무원 인력 증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역무원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만성 적자난을 겪고 있는 서울교통공사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인력 증원은 쉽지 않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은 20일 오전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믿기 어려운 사고를 당했지만 사법제도도, 회사도, 동료들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며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이날 대책으로 △승객접점부서 현장 안전 강화 △사망사고 관련 역무원 보호 강화 △노사 공동 전사적 조직문화 개선 방안 등을 제시했다. 세부 대책으로는 지하철 역사 등 승객접점부서에서 야간순찰 업무 시 ‘2인1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하는 게 골자다. 공사 규정에 따르면 터널 내 작업장과 공사장 등 위험 요인이 있는 곳만 의무적으로 2인1조 근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 피해자인 신당역 역무원도 지난 14일 오후 9시쯤 혼자 야간 순찰 중 목숨을 잃었다.
서울교통공사 1~8호선 역사 인력운영 현황에 따르면, 전체 265개 역(3,360명 근무) 중 27%인 73개 역(715명)이 2인 역무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루에 4번 교대하는 2인 운영 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은 전체의 40%에 달한다. 역무원 2명 체제에선 민원 접수를 위해 한 명이 자리를 지키면 순찰 업무는 혼자 맡을 수밖에 없다. 2인 체제 운영역에서 근무 중인 한 역무원은 “1인 순찰은 불가피하고, 욕설을 하거나 흉기를 소지한 승객이 있으면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나간다”며 “신당역 사건은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력 확충이 가장 현실적 해답이지만 예산문제가 걸림돌이다. 서울시는 역사마다 ‘2인1조’ 순찰을 보장하려면 최소 6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시 고위관계자는 “공사의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인력 증원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기존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공사는 2020년 1조1,137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9,644억 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 올해도 1조 원대의 적자가 예상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신당역 사건 발생 직후인 16일 페이스북에 지하철 역사 내 ‘2인1조 순찰’을 매뉴얼화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공사는 이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신당역 사건 재발 방지 대책으로 △여성 직원 당직 축소 △현장 순찰이 아닌 폐쇄회로(CC) TV를 이용한 가상순찰 도입 △호신장비 확대 지급 등의 방안을 내놓았지만 인력 충원은 빠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2016년 구의역 사고 때도 그랬듯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과 외주화를 통한 인력 감축을 상시적으로 해왔다”며 “인건비 절약만을 내세워 시민과 역무원의 안전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