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역에서 히잡·국기 화형식... '성차별 분노' 대폭발

입력
2022.09.20 20:20
17면
히잡 제대로 안 썼다 체포된 20대여성 의문사
진상 규명과 히잡 의무 착용 항의 시위 격화
이란 정부 무력 진압... 총 맞아 5명 사망

"독재자에게 죽음을!" 지난 19일(현지시간) 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신을 대리'하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3)를 겨냥한 구호가 울려 퍼졌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갔다 갑자기 숨진 한 20대 여성의 의문사가 도화선이 됐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는 이란 전역으로 퍼져나가 반정부 시위로 격화하고 있다.

"여성, 생명, 자유" 외치며 거리 나선 여성들

희생된 여성은 22세의 마흐사 아미니다. 지난 13일 가족들과 함께 테헤란을 찾았다가 여성 복장을 단속하는 이른바 도덕 경찰(morality police)의 단속에 걸렸다. 머리를 완전히 가리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히잡 바깥으로 내놓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문제는 경찰 조사를 받다 쓰러져 병원에 옮겨진 아미니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사흘 만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폭력을 쓴 적이 없다고 했지만, 아미니의 머리에서 "심각한 외상"이 발견됐다고 영국 런던에 기반한 뉴스채널 이란 인터내셔널은 보도했다.


그가 숨진 다음날인 17일, 아마니의 고향인 북서부 쿠르디스탄주(州) 사케즈에서 가장 먼저 시위의 불길이 올랐다. 시위대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흔들고, 불태우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다. 테헤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는 거리에서 억압의 상징을 불태우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을 찍어 공유했다. 아미니의 이름을 딴 '#Mahsa_Amini'는 페르시안 트위터 사상 가장 많이 공유된 해시태그가 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란 여성인권운동가로 유명한 마시 알리네자드는 "히잡 강제에 반대하는 수백만 명의 마흐사가 성차별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고 자신의 SNS에 썼다.

억눌렸던 반발 한꺼번에 폭발...반정부 시위로 격화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단체 행동은 종국에는 반정부 시위로 격화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이슬람 지도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태웠다면 이란 젊은이들은 오늘 이란 국기를 불태웠다"는 글과 함께 이란 국기를 화형에 처하는 영상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맞서 피해를 키우고 있다. 로이터는 경찰이 쏜 산탄총과 최루탄을 맞고 시민 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가 단기간에 반정부 성격을 띠게 된 데는, 그동안 이란 정부 정책에 억눌려온 이란 여성들의 반발심이 한꺼번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공공장소에서 만 9세 이상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해 왔다. 여성들이 이에 반발했으나 단속을 강화해 감옥에 가두고 구타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 직장에서 쫓겨나고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시위가 격화하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정권을 약화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슬람 율법(샤리아) 학자 출신으로 지난달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는 새 법령에 서명하는 등 이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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