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없어지니 지구가 깨끗해지는 것 같아요.”
폭우가 지나간 지난달 28일 서울 반포 한강공원. 한 여자 어린이가 강가 곳곳의 쓰레기를 아빠가 든 봉투에 연신 주워 담았다. 이들 주변에선 쓰레기를 집어 봉투에 넣는 시민들의 대화가 여기저기서 도란도란했다.
이들이 저절로 모이지는 않았다. 봉투와 집게가 든 ‘케이-백(K-Bag)’이 배부되고 있었다. ‘한강 쓰담쓰담’ 행사를 기획한 곳은 KB금융그룹. 젊은 ‘개념 세대’ 사이에서 유행인 ‘플로깅’에 착안했다. ‘줍다’라는 뜻의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영단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가 플로깅이다. 2019년 국립국어원이 저 신조어를 대신할 우리말로 ‘쓰담달리기(쓰레기를 담으며 달린다)’를 제안했고, 행사명에 ‘어루만지다’라는 의미도 포개졌다.
호응은 좋았다. 한 시민은 “집중호우 탓에 매일 달리던 길을 한동안 뛰지 못했던 기간이 한강의 고마움과 환경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 시민과의 소통이 값졌다는 외국인도, 북극곰 살리기에 힘을 보탤 수 있어 보람찼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작은 실천’은 플로깅뿐 아니다. 오염으로부터 강을 지키는 실천이 플로깅이라면 급감 중인 꿀벌을 살리는 실천은 숲 조성이다. 꿀벌은 100대 식량 작물 중 70%의 수분(受粉)을 매개한다. 강원 홍천에 4년간 밀원수(꿀의 원천이 되는 나무) 10만 그루를 심을 계획인데, 이 역시 국민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케이-비(K-Bee)’다. 가상 공간에서 나무 심기 미션을 수행하면 KB금융이 홍천 밀원 숲에 참가자 이름의 나무를 심어 준다. 4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관 옥상에 문을 연 도시 양봉장도 체험의 장으로 활용된다.
K-Bag과 K-Bee, 두 캠페인을 아우르는 슬로건 ‘코리아 베러(Korea Better)’는 사명(KB)으로 수렴한다. 원래 사명(국민은행)에서 유래했을 ‘K-’는 K-팝 등의 ‘한국식’을 연상시키고, 자부심을 환기한다.
‘세상을 바꾸는 국민’이 자신감을 주는 대국민 메시지라면 ‘세상을 바꾸는 금융’은 KB금융의 자기 암시다. 본업인 금융을 통해 좀 더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기후변화 대응도 그 일환이다.
먼저 꺼내 든 건 채찍이다. 2020년 9월 ‘탈석탄 금융’ 선언이 대표적이다.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용 신규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채권 인수 참여를 전면 중단한다고 공표했다. 이듬해 2월에는 세계 금융사 협약인 ‘적도 원칙(Equator Principles)’에 가입했는데, 환경을 파괴하는 대형 개발 사업에 투ㆍ융자를 하지 않는다는 게 참여사들의 약속이다.
물론 이런 결정이 선의에서만은 아니다. 기후변화는 금융업에 리스크다. 현재 유럽연합(EU)과 미국이 탄소 과다 배출 업종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시사한 상태다. 지난해 9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EU 규제로) 투자자들이 고탄소 기업의 자산을 팔아 치우고 리스크 비용을 재조정할 경우 기업은 자산 가치 폭락과 차입 비용 증가 등으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견인차 금융’을 자처한다. 친환경 기업ㆍ프로젝트 대상 투자와 컨설팅이 그렇다. 이미 2007년부터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금융 자문 및 신디케이트론 주선도 해오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한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항상 선두에 나섰다. 실제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위원회’ 도입, 탈석탄 금융 선언, 적도 원칙 가입 등 2020년부터 잇따라 미답의 영역을 개척해 왔다. 지난달 은행연합회가 ‘금융사 탄소 배출량 산정 및 탄소중립 목표 수립 매뉴얼’을 내놓기 한참 전, 저 매뉴얼이 담은 방법들을 맨 먼저 적용한 곳이 KB금융이었다.
이런 노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공식 행사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최고위급 회의’와 올 5월 COP26 의장단 리더십 단체인 ‘비즈니스 리더스 그룹’ 회의에 국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로는 유일하게 윤 회장이 초청됐다. 6월 윤 회장이 덴마크 기후대사와 주한대사를 만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금융사의 역할을 논의한 것도 리더의 책임감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