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17일 경기 하남시 미사경정공원 광장에서 열린 KBS1 '전국노래자랑' 녹화에서 '행복의 나라로'가 울려 퍼지자 MC 김신영(39)은 한동안 노래를 잇지 못했다.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고, 그는 왼손으로 왼쪽 눈가를 훔쳤다. 김신영은 울고 있었다. "제가 자주 우는 편이 아닌데 어려서 힘들 때 들었던 노래를 이렇게 '전국노래자랑' 첫 방송에서 부르니 벅차오르더라고요." 노래가 끝나자 김신영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지난 3일 대구에서 첫 녹화를 하긴 했으나, 방송상으로는 이날 녹화분이 MC 김신영의 첫 방송으로 먼저 전파를 탈 예정이다.
훌쩍이는 김신영 옆에서 노래를 이어간 이는 양희은(70)이었다. "얼마나 떨리겠어요, '전국노래자랑'의 어린 싹이라고 생각하시고 보듬어 주세요." 양희은은 관객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김신영을 당부했다. 꼭 학교에 입학하는 자식 손잡고 선생님께 부탁하는 부모 같았다. 딸 같은 후배가 '국민 MC' 송해의 뒤를 이어 서민 방송의 산 역사인 '전국노래자랑' 새 진행자로 발탁됐다는 소식을 듣고 양희은은 이날 오전 MBC FM '여성시대' 진행을 마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기는 데뷔 51년 만에 처음이다. 양희은은 '참 좋다'와 '행복의 나라로' 두 곡을 부르며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경기도민은 '전국노래자랑' 새 MC 김신영을 뜨겁게 반겼다. 오프닝 무대에서 흘린 눈물을 닦고 김신영이 "전국!"을 외치자 3,000여 명이 훌쩍 넘는 관객은 "노래자랑~"이라고 함성을 쏟아냈다. 김신영이 이어 "일요일의 막내딸, 사랑받고 싶어서 큰절 한 번 올린다"며 무대에 엎드려 관객들에게 절을 하자 광장엔 다시 한 번 박수 소리가 넘쳤다. 김신영은 "전국"을 선창할 때마다 울컥한다. "'전국노래자랑' 실로폰 소리는 태교 음악이잖아요. 어려서부터 이 소리를 듣고 자랐고, 이 소리에 맞춰 '전국!'을 외치고 관객분들이 '노래자랑'이라고 화답하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라고요. 참느라 혼났어요.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대구 첫 녹화는 태어나서 긴장을 가장 많이 했죠. 지인들이 영상을 보내줘 대기실에서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송 대표(송은이)님이랑 같이 울었죠." 이날 취재진과 만난 김신영의 말이다.
김신영은 출연자가 노라조의 '사이다'를 부르자 무대 옆에서 깡충깡충 뛰며 "사이다"를 연신 외쳤고, '담배가게 아가씨' 등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양손으로 손뼉을 치며 흥을 돋웠다. 그는 녹화 두 시간 내내 한 번도 앉지 않았지만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김신영은 "예전부터 지방에 사흘 동안 내려가서 행사를 많이 했다"며 "그런 것들이 조합돼 체력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하루에 운동을 세 시간씩 하며 체력을 다져놨다는 그는 "'전국노래자랑' 삼촌(악단)들이 '힘들 거야'라며 준 박카스"를 마시고 무대에 올랐다.
김신영은 이날 무대에서 출연자와 즉석에서 어울려 발을 비비며 디스코춤을 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만점 출연자들 덕분에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는 쉬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금기는 없다. 김신영이 송해의 뒤를 이어 받들고 있는 무대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도 참가자분께 '뭐든지 하세요, 다 받아드리겠다'고 했다"며 "다 잘하고 싶어서 돌발 상황도 벌어지는 거고, 장터 행사를 많이 해봐서 어른들과 함께하는 데 익숙하다"고 말했다. 녹화 전 그는 참가자들에게 먼저 찾아가 인사를 했다.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또 어떻겠습니까, 그게 다 '전국노래자랑'의 맛과 멋이죠. 대학교 은사인 전유성 선생님께 연락이 왔어요. '신영아, 때론 져 주기도 하고 누가 밀면 넘어지기도 해야 한다'라고요."
40대 한의사는 마이클 잭슨처럼 말끔한 흰색 정장을 차려입고 그 유명한 '문워크'로 뒷걸음질하며 무대로 등장했고, 20대 신입사원 세 명은 선글라스를 낀 채 무대를 휘저었다. 모두 체면을 잊은 축제에 이계인을 비롯해 송은이도 깜짝 출연해 흥을 돋웠다. 송은이는 '정말로'를 부르며 발을 지그재그로 옮겨가며 트위스트 춤을 췄다. 이를 지켜보던 70대 관객은 "잘한다, 잘한다"라고 웃으며 손뼉 쳤다. 김신영이 이끄는 '전국노래자랑'은 Z세대에게도 새 놀이터가 됐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은 방역투명마스크를 쓰고 혼자 녹화를 지켜봤다.
나이도 권위도 다 벗어던지고 탈권위의 해방감을 선사하는 전국팔도 유랑단('전국노래자랑')에 김신영은 "출연료도 확정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45년생 트로트 가수 '다비 이모'로도 활동 중인 희극인은 팔도를 돌아다니며 만날 재기발랄한 서민들에게 영감을 받아 또 다른 '부캐'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날 촬영분은 내달 16일 전파를 탄다. "'전국노래자랑'은 42년 된 오래된 나무예요. 그 나무를 베고 잘라서 다른 무엇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그 거목 옆에서 조금씩 자라가는 나무가 되려고요. 다만, 어디든 막둥이 하나 들어오면 분위기가 바뀌잖아요. 시청자분들이 막둥이 하나 키운다는 생각으로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