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또 학살하고 고문... 우크라 탈환지역서 450명 매장지 발견

입력
2022.09.16 20:10
11면
최소 450구 넘는 우크라인 시신 매장된 듯
러시아, 점령지마다 고문실 운영 정황
UN, 현장조사 방침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우크라이나 북동부 전략요충지에서 시신 450구 이상이 묻힌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러시아로부터 되찾은 영토에서 발견된 매장지 가운데 최대 규모다. 무고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러시아군에 학살당한 뒤 무자비하게 땅에 묻힌 ‘부차의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닷새 만에 시신 1000구 발견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북동부 하르키우주(州) 이지움 외곽 숲에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며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덤 450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은 AP통신에 따르면, 해당 지역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무덤에는 17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군인 시신이 묻혔다고 표시돼 있었다. 이 무덤 주위를 작은 무덤 수 백 기와 얼기설기 만들어진 나무 십자가가 둘러싸고 있다.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략통신센터는 대부분 민간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들은 총에 맞거나 포격, 지뢰 폭발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르키우 경찰은 무덤 전체를 발굴한 뒤 법의학 조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키이우 외곽 소도시 부차에서처럼 민간인 집단학살을 자행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4월 부차에서는 민간인 시신 410구가 묻힌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대부분 시신에선 총살과 고문의 흔적이 발견됐다. 매장된 시신의 규모만 놓고 보면 이지움에서는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잔학행위가 벌어졌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매장지가 아닌 곳에서도 희생자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이지움 탈환(10일) 이후 닷새간 이 지역에서 수습된 민간인 시신은 1,000구가 넘는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한 달가량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북부와 달리 이지움은 4월 이후 5개월 넘게 러시아 통제를 받았다”며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점령지마다 ‘고문실’을 운영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예브헨 에닌 우크라이나 내무부 차관은 “우크라인은 물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처형 흔적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현장 조사 중인 우크라이나 검찰 수사관들 역시 신체 일부가 심하게 훼손한 시신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이 지나간 자리마다 범죄 흔적이 뚜렷하게 남은 셈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수복 지역을 파죽지세로 늘리면서 러시아가 꽁꽁 숨겨 온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공개될 전망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즉각 현장 방문조사를 검토하고 나섰다. 엘리자베스 트로셀 OHCHR 대변인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있는 직원들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으며, 조만간 이들이 이지움을 직접 찾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굴욕’당한 러시아, 민간시설 공격 선회

우크라이나의 거센 반격으로 굴욕을 당한 러시아는 ‘발전소, 댐 등 민간 기반시설 집중 타격’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러시아군은 14일 중부 도시 크리비리흐에 위치한 댐을 공격한 데 이어 15일엔 카라춘 댐 주변을 폭격했다. 인근 강 수위가 위험할 정도로 상승하면서 주민들은 긴급 대피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맹추위가 닥치는 겨울철을 앞두고 전기와 수도를 끊으려는 의도”라며 “기관시설 공격이 지속되면 우크라이나의 국가 운영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민간 시설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 방공 시스템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