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가방 시신' 용의자, 아이들 걸림돌로 생각해 범행?"

입력
2022.09.17 17:00
전문가 "자녀 데려오고 싶지 않은 점 분명"
"한국 생활에 걸림돌로 생각했을 가능성"
"자식이라 시신 훼손보다 숨기고 봤을 듯"

"사건을 저지른 동기가 아직 조사되지 않았고, 이 사람의 히스토리를 확인해봐야 하나 분명한 사실은 그 아이들을 한국에 데리고 오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데 두 아이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지난 15일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검거된 뉴질랜드 '여행 가방 시신 사건' 용의자인 한국계 뉴질랜드 여성 A(42)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범죄심리학회 이사인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이들에 대한 처지에서부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그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암으로 사망한 남편이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용의자가 혼자) 뉴질랜드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애들을 데리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남편과 사별 후 뉴질랜드에서 거주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면) 애들을 데리고 한국에 와 생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언론에는 "2017년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현지 한인회 관계자)는 얘기도 나왔다.

뉴질랜드 국적을 보유한 한국계 여성인 A씨는 2018년쯤 뉴질랜드 오클랜드 지역에서 자녀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달 현지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한 창고회사가 주인 없는 물건을 주로 중고물품 중심의 온라인 경매에서 판매했는데, 낙찰자가 가방을 수령해 열어봤더니 그 안에 어린이 2명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숨진 아이들의 사망 당시 나이를 각각 10세, 7세였던 것으로 확인했고, 창고를 장기 임차했던 한국계 여성A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경찰은 A씨가 2018년 7월쯤 한국에 들어온 뒤 서울과 울산 등에서 도피 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접한 일부 누리꾼들은 2006년 7월 세상에 알려진 서래마을 영아 살인 유기 사건을 떠올렸다. 자녀를 살해한 후 시신을 장기간 숨겼다 뒤늦게 들통난 공통점이 있어서다.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인 사건' 떠올리게 해

서래마을 영아 살인유기 사건은 프랑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거주하던 프랑스인 장 루이 쿠르조씨가 자기 집 냉동고에서 숨진 아이 2명의 시신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프랑스에서 아내, 아들 2명과 휴가를 보내다 업무 차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프랑스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유전자(DNA) 검사 결과, 신고했던 쿠르조씨가 영아 2명의 친부로 드러났다. 그 사이 쿠르조씨는 프랑스로 출국했지만, 국과수는 쿠르조씨 집에 있던 칫솔, 귀이개, 빗 등에서 나온 유전자를 추가 분석해 쿠르조씨의 아내가 숨진 영아들의 친모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용의선상에 오른 부부는 "한국의 DNA 검사를 믿을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자국 기관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DNA 검사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긴급 체포됐다. 결국 아내가 "피임에 실패해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어 출산한 뒤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2002년과 2003년에 차례로 태어난 영아들을 목졸라 살해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그가 한국에 오기 전 영아 한 명을 더 살해한 사실도 프랑스 당국 조사로 드러났다.

'함께 사는 남편이 어떻게 사건을 모를 수 있냐', '남편도 공범이다'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아내는 "남편이 장기 외국출장이 잦아 임신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며 단독 범행이라고 했다.

두 사건은 중요 증거물인 시신을 냉동고와 가방처럼 상대적으로 쉽게 발각될 수 있는 물건에 숨겼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통상 시신을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 묻거나 훼손하는 방법 등으로 완전범죄를 꿈꾸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2017년 부산에서는 30대 여성이 2014년 9월과 지난해 1월에 각각 출산한 두 아기 시신을 냉장고 보관해오다 구속됐고, 2015년 일본에서는 30대 여성이 2006년부터 5명의 아이를 낳아 벽장 등 집안 곳곳에 유기한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은닉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고, 가해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자식이니까 잔인하게 시신을 훼손하기 보다는 일단 숨기고 보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방·냉동고 허술한 유기? 시신 훼손 보다 은닉

용의자 송환 여부도 관심사다. 뉴질랜드 측이 요청한 '범죄인 인도심사' 결과에 따라 송환 여부가 결정되는데, 현재로선 송환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거부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이웅혁 교수는 "우선 용의자의 혐의가 충분히 소명돼야 한다"며 "숨진 두 아이의 국적이 한국이라면 피해자가 한국인이라 형사 재판권이 한국에 있고, 한국에서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이 경우 (용의자) 인도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교수는 "용의자가 계속 범행을 부인한다면 뉴질랜드와 한국 경찰이 얼마나 원활하게 협조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서래마을 사건은 숨진 아이가 낳은지 얼마 안 된 영아였고, 뉴질랜드 가방시신 사건 피해자는 수년간 키워온 아이들이라 조금 성격이 다른 면도 있어 왜 살해했는지, 남편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등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래마을 사건의 경우 한국에서 범행이 벌어졌으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프랑스인이었고, 조사도 프랑스에서 이뤄졌다. 당시 검찰은 범인인 친모에게 살인죄에 해당하나 '임신 거부증'이라는 심각한 정신병으로 인한 범행임을 감안해 1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최종적으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친모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4년만에 가석방됐다. 이후 남편인 쿠르조씨는 임신거부증과 영아 살해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돼 나왔다.

박민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