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페더러"... 불멸의 기록 남기고 떠나는 황제에게 라이벌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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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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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20년간 세계 남자테니스를 지배했던 '우아한' 백핸드 스트로크를 볼 수 없게 됐다. 21세기 남자 테니스 ‘빅3’로 불렸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별은 단연 그였다. 테니스 선수로는 크지 않은 체격이었지만, 영리한 두뇌 플레이와 특유의 '한손 백핸드'는 테니스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진정한 1인자에게만 붙여주는 ‘황제’ 칭호도 그의 몫이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1·스위스)가 24년 현역 생활의 마감을 알렸다.

페더러는 1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난 3년간 부상과 수술이란 어려움을 겪었고 다시 경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난 내 몸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있다. 나는 41세이며 24년 동안 1,500번 이상 경기를 치렀다”며 “다음 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레이버컵이 내 마지막 남자프로테니스 (ATP) 투어 경기가 될 것”이라고 은퇴를 선언했다.

페더러는 라파엘 나달(스페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와 함께 ‘빅3’로 불리며 세계 남자테니스를 쥐락펴락하던 스타였다. 프로통산 1,251승을 거뒀고 우승 트로피도 103개나 따냈다. 둘 모두 1970년대 중반 미국의 전설 지미 코너스에 이은 역대 2위의 대기록이다.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 회수는 나달(22회)과 조코비치(21회)보다 적지만, 최초의 '메이저 20회 우승'(2018년 호주 오픈)을 달성한 것은 그였다. 세계 1위는 2004년 2월에 처음 올라 2018년 6월까지 총 310주간 자리를 지켰다. 이는 373주간 1위를 지킨 조코비치 다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연속 세계 1위' 부문은 페더러가 독보적인 1위다. 그는 2004년 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4년 6개월(237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이 부문 2위는 160주 연속 1위를 달린 코너스다. 최고령 단식 세계 1위도 2018년 페더러(36세 10개월)가 갖고 있다.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깔끔한 이미지로 '코트의 신사'로 불리며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ATP 투어 선정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에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선정됐다. 아울러 17년 연속 테니스선수 수입 1위를 지킨 페더러는 지난 해 7월 이후 1년 가까이 경기에 나서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1,000억원이 넘는 광고수입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황제도 연속된 무릎 부상과 수술, 재활의 쳇바퀴 속에서 한계를 인정해야만 했다. 페더러는 “투어가 나에게 준 모든 것을 놓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씁쓸한 결정”이라고 은퇴 결심을 아쉬워했다. 그는 “그러나 동시에 축하할 것이 너무 많다. 나는 나 자신을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테니스를 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부여 받았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에서 뛸수 있었다”고 위안했다. 그러면서 페더러는 “코트에 있는 경쟁자들과 팬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스위스의 한 '볼 키드'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전 세계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페더러의 은퇴소식에 평생의 경쟁자인 나달도 아쉬움을 쏟아냈다. 나달은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슬픈 날”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당신과 코트 안팎에서 수많은 엄청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었다”며 ‘황제’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한편, 페더러의 은퇴 무대인 레이버컵은 23일 영국 그리니치의 O2아레나에서 개막돼 3일 동안 진행된다. 레이버컵은 일반 투어 대회가 아닌 유럽과 월드 팀의 남자 테니스 대항전이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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