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유기동물이라 하면 개와 고양이가 먼저 떠오르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는 소동물도 많이 올라온다. 소동물 가운데 눈에 띄는 건 토끼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키우던 토끼 수십여 마리를 ‘원정 유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토끼 분양'이라고 입력하면 2,000원에서 10만 원대에 거래되는 토끼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키우기 쉽다고 생각해 준비 없이 토끼를 입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유기된 토끼는 많지만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동물보호단체의 유기동물 입양 홍보는 개∙고양이 위주여서 토끼를 알릴 기회가 많지 않다. 또 대형마트나 온라인에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토끼를 쉽게 살 수 있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토끼보호단체에서 유기 토끼 '호박이'를 입양한 손한빛(30)씨는 1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토끼보호연대가 운영하는 입양카페 '꾸시꾸시'에만 60여 마리가 보호되고 있고, 유기동물 응용소프트웨어(앱) 포인핸드에도 가족을 기다리는 토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입양을 고려할 때 유기 토끼도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손씨가 처음부터 토끼를 입양하려 했던 건 아니다. 수년 전 키우던 기니피그를 의료사고로 떠나보낸 그는 우연히 토끼보호연대(토보연)를 알게 됐고, 꾸시꾸시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봉사활동 중 도망 다니던 토끼가 품 안에 안겨왔고,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호박이에게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왔을 때는 쓰다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3개월이 지나자 쓰다듬어도 즐기게 됐다고 한다. 또 사람처럼 대(大)자로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고 "완전한 가족이 됐다"고 느꼈다고 한다.
손씨가 힘들고 우울할 때면 호박이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는 "귀찮게 굴면 도망가지만 막상 관심을 갖지 않으면 만져달라 조르는 게 고양이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다"며 "평소에는 살갑게 굴지 않다가도 힘들 때면 그걸 알고 옆에 있어주는 게 신기하고 기특하다"고 했다. 또 대부분의 토끼는 배변을 잘 가리고 스스로 털을 정돈하기 때문에 목욕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되며 짖지 않아 공동주택에서 키우기도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키우는 방법 자체가 쉽지는 않다. 토끼는 야행성으로 초저녁부터 활발히 활동하며 환경에도 예민하다. 건초 등 음식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이갈이가 되지 않아 치아질환이 생긴다. 또 영역다툼이 심해 집단사육도 어렵다. 털도 많이 빠진다. 토끼를 진료할 동물병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그는 "입양 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