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지내는 이 땅의 가장과 집안 어른들은 명절이면 늘 긴장한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즐거워야 할 자리에서 남녀·세대 간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질까, 혹은 호칭 문제로 오랜만의 가족모임이 엉망이 되진 않을까 걱정한다. 연휴가 끝난 뒤에는 또 명절증후군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지 귀를 대며 가족 심기까지 챙긴다. 명절이 즐겁기보다는 부담돼 가족과 모이지 않고 친구들끼리 여행 간다는 이야기가 이미 명절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터다.
한국 유교의 심장과도 같은 성균관이 추석 연휴 나흘 전 가진 ‘대국민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은 이 같은 집안 어른들의 고민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차례상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상 차리는 일을 두고 갈등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만큼, 차례상의 과감한 변신을 통한 ‘위기 돌파' 선언이다. 차례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스러운 의식. 그러나 형식미 내지는 그 의식을 치르는 한낱 도구에 불과한 차례상 탓에 전통의 본질이 훼손되거나 차례의 의미가 부정되는 위기를 유생들이 좌시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성균관이 아홉 가지 음식으로 진설된 단출한 차례상을 제시한 덕분인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라진 명절이라 그랬는지 이번 추석 고향 가는 길은 무던히도 막혔다. 그 길에선 문득 이런 생각 하나가 들었다. '고향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는 이 대열에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길 위에서 전쟁을 벌여가면서까지 부모 없는 고향을 찾지 않을 것이다. 또 정부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도 했으므로 이 전쟁의 조기 종식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전국에서 매년 약 8만 명의 청년이 수도권으로 유입되는데, 나고 자란 곳에서 공부하고 취업해서 잘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도권(메가시티)’이 두어 개 생기면 귀성·귀경 전쟁은 덜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나 진행 중인 메가시티 구축 사업을 보면 기대난망이다. 메가시티 출범을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변함없지만, 시·도지사들이 딴지를 거는 탓이다. 부산 울산 경남을 묶은 부울경특별연합이 대표적이다. 행정안전부로부터 특별연합 규약까지 승인받아 사실상 ‘다 된 밥’이지만, 울산시장과 경남지사가 발을 빼는 분위기다. 지방선거를 통해 모두 단체장이 싹 바뀐 충청권도 마찬가지. 선거에서 초광역상생경제권 협약을 체결, 지지를 받은 단체장들이지만 수도권과 인접한 충남, 대전 세종, 그리고 강원과 인접한 충북이 입장 차이를 보인다. 모두 재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지적과 함께 소탐대실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은 자가 동일할 땐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고 말지만, 임기 4년 단체장들의 욕심이 빚은 손실은 그 자신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귀성 전쟁을 치르는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 인재와 돈을 쉬지 않고 빨아들이며 팽창하는 수도권의 파괴력을 모를 리 없는 이들이지만, 안일하다.
“전을 꼭 부치지 않아도 됩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는 근거 없는 이야깁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가벼운 차례상을 제시한 성균관처럼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다른 것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자세와 절박함이 그들에게도 필요하다.
정민승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