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현지시간) 오후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부의 주택가. 대형 트레일러 한 대가 A씨 가족의 주택 앞마당에 여행가방 2개와 유모차, 아이들 장난감 등을 내려놓고 갔다. 한 창고회사가 온라인 경매에 부친 주인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여행가방에서 유독 끔찍한 악취가 새어 나왔다. 가방을 열어 본 A씨는 경악했다. 심하게 부패한 어린이 시신이 한 구씩 담겨 있었던 것이다.
숨진 아이들은 경찰 수사를 통해 2009년과 2012년 각각 출생한 여아(10), 남아(7)로 확인됐고 시신은 3~4년 정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됐다. 남매의 어머니인 한국계 여성 B(42)씨가 곧장 용의자로 특정됐다. 그가 창고를 장기 임차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사망 추정 시점인 2018년 B씨가 재외동포 비자(F-4ㆍ최대 5년 체류)를 받아 한국으로 떠난 점도 그의 범행을 입증할 유력한 근거였다. 뉴질랜드 경찰은 B씨 어머니를 비롯해 현지에 거주하는 친척들에게 용의자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B씨 남편도 암으로 숨진 뒤였다.
경찰은 친척 등을 통해 한국에 머물던 B씨에게 귀국을 종용했으나,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현지 경찰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B씨의 ‘적색 수배’를 요청하고 한국 경찰과 공조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 경찰도 B씨 추적에 애를 먹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 뉴질랜드로 이민 가 현지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계 뉴질랜드인 남성과 결혼해 줄곧 현지에서 거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가족이나 친구 등도 거의 없었다. 외국 국적이라 수사권이 없다 보니 카드ㆍ통신 사용 등 생활 반응 추적조차 여의치 않았다.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에 최근 결정적 제보가 날아들었다. 지난달 말 해당 사건이 언론보도로 알려진 후 울산중부경찰서에 “B씨가 울산에 있다”는 지인의 제보가 접수된 것이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확인과 잠복수사 끝에 15일 울산 울주군의 한 기업 사택(아파트)에서 B씨를 붙잡았다.
조사 결과, B씨는 입국 후 서울에서 머물다 올 초부터 울산에 거주했다. 사택 세대주와 용의자는 친인척 관계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권이 없어 장기 도피 기간 B씨가 어떻게 생계를 이어 갔는지 등 세부 행적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서울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자녀들을 죽이지 않았다”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B씨의 신병은 뉴질랜드 측이 요청한 ‘범죄인 인도심사’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데, 현재로선 송환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무부는 이날 “뉴질랜드 측의 긴급인도구속 요청이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돼 서울고검에 구속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서울고검은 즉각 긴급인도구속 및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B씨의 신병을 확보하고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긴급인도명령은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기 전 현지에서 신병을 확보해두는 수단으로 B씨는 45일간 구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