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업추비 다 깎는데… '제2의 특활비' 특경비, 홀로 증가

입력
2022.09.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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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특경비 2.1% 늘어난 9,015억 원
감시 사각지대 확대, 긴축 기조와도 배치
사실상 임금으로 전용 "삭감 쉽지 않다"

정부가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립을 명목으로 여비, 업무추진비 등 부처 운영에 필요한 경상 경비를 줄인 가운데, 사용처를 증빙하지 않아도 돼 '제2의 특수활동비(특활비)'로 불리는 특정업무경비(특경비)는 되레 늘렸다. 나랏돈을 투명하게 써야 한다는 집행 원칙은 물론 윤석열 정부의 공공부문 긴축 기조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15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 첨부서류'를 보면 내년도 특경비 편성액은 9,01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4억 원(2.1%) 늘었다. 특경비는 수사·감사 업무 등 말 그대로 특정한 업무를 하는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영수증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수당처럼 매달 일정액을 주는 금액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경비는 업무와 무관한 곳에 써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특활비와 비슷하면서도 총액은 훨씬 크다. 내년도 규모는 특활비 1,249억 원(국방부 정보보안비 포함하면 2,433억 원)과 비교해 약 7배 많다. 2021년 기준 특경비를 받은 부처는 사실상 전 기관인 57개로 특활비를 받는 부처 수(15개)를 훌쩍 넘는다. 주로 수사 기관에 배정하는데 경찰이 전체의 70%인 6,126억 원을 가져갔고 △법무부 646억 원 △국세청 500억 원 △해양경찰청 476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특경비 증가는 그만큼 감시망에서 벗어난 예산은 늘렸다는 뜻이다. 2013년 당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직 당시 받은 특경비 3억 원 중 일부를 금융투자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낙마했다. 감사원은 2019년 조세심판원이 특경비를 직원에게 지급하지 않고 조직 운영비로 임의 집행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20대 국회(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에서는 특경비를 99% 증빙 없이 현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와 공무원의 '현금창구'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경비 확대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 방향과 반대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을 위해 특히 기관 운영과 관련한 경상 경비를 줄이고 있다.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 국정 과제 추진 등 '바깥일'을 수행하기 위해 '집안일'에 필요한 돈을 최대한 아끼는 것이다.

정부는 실제 대표 경상 경비인 △여비 –2.7% △업무추진비 –0.6% △운영비 –4.4% 등의 내년도 예산을 삭감했다. 특활비도 소폭이지만 올해보다 10억 원 줄였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을 향해 경상 경비를 올해 하반기 10%, 내년 3% 감축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특경비가 늘어난 건 현 정부의 예산 절감 기조와 배치된다"며 "특경비는 영수증 증빙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특활비보단 감시 체계가 엄격하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특경비가 애초 취지와 달리 인건비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용되면서 삭감하기 어려워진 구조가 됐다는 점이다. 실제 2017년 7,340억 원이었던 특경비는 매년 152억~400억 원 증가해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특경비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검증하기 어렵지만 일선 직원들은 임금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낮추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