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당역 역무원 살해 피의자가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10개월이 지났지만, 가해자가 보호조치를 위반했을 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는 지적이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15일 지하철 화장실에서 20대 역무원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30대 남성 A씨를 살인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는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20대 여성 역무원 B씨를 뒤쫓아가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화장실 콜폰으로 도움을 청했고, 동료 직원과 시민 등이 현장에서 A씨를 제압해 경찰에 넘겼다.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A씨는 과거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다가 직위해제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B씨에게 만남을 요구하며 스토킹해 왔던 동료 역무원으로, B씨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 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과 같은 스토킹 범죄는 수년 사이 꾸준히 증가했다.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2,921건이었던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는 2020년 4,515건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신고 건수가 1만4,509건으로 전년 대비 3.2배 폭증했다. 올해 1~7월 집계 신고 건수는 전년 신고 건수를 넘어선 총 1만6,571건에 달한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범죄 신고가 늘었지만 여성계는 마냥 환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 왔다. 법이 가해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피해자 보호조치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스토킹처벌법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경찰은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화 금지 등의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치를 위반했을 때 사용 가능한 제재는 1,000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이 전부다. 스토킹처벌법의 범죄 예방 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다 강력한 보호조치인 '잠정조치'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를 경찰서 구치소에 유치하는 것까지 가능하고 △접근 금지 명령을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잠정조치 기간은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법원이 예외적인 경우로 잠정조치를 인정해도 최대 6개월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자 보호조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집계된 긴급응급조치 위반율은 13.2%, 잠정조치 위반율은 1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가정폭력 관련 긴급조치 위반율(4.1%)을 3배가량 웃돈 규모다.
전문가들은 보다 강력한 스토킹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스토킹 피해자 보호와 지원 강화를 위한 입법과제' 포럼에 참석한 박보람 법률사무소 비움 변호사는 "스토킹처벌법이 신변안전조치 규정을 명시하지 않아서 스토킹 행위의 상대방, 피해자 개념, 경찰 실무상 신변보호 대상 범위와 관련해 경찰 실무에 혼란이 있다"며 "신변안전조치 조항을 신설해 피해자 신청이나 범죄 발생 우려가 있을 때 직권에 의해 신변 경호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