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눈먼 돈' 명함도 못 내민다… 베일에 싸인 '정보 예산'

입력
2022.09.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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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특활비 속 정보 예산, 국정원이 편성·관리
예산 당국 심의 안 거치고 국회 심사도 비공개
특활비 증가 법무부 "증액 부분, 우리 소관 아냐"
집행 주체도 엇갈려...깜깜이 예산 중 깜깜이

엄격한 통제를 받지 않아 '눈먼 돈'으로 불리는 특수활동비(특활비) 내에서도 꽁꽁 감춰진 예산이 있다. 바로 국가정보원이 편성·관리하는 '정보 예산'이다. 이 예산은 예산당국의 철저한 심의를 거치지 않을 뿐 아니라 국회 예산 심사도 비공개로 이뤄져 가장 깊숙한 '감시 사각지대'라는 지적이다.

14일 예산당국에 따르면, 정부가 대통령비서실, 법무부, 경찰 등 14개 부처에 배정한 내년도 특활비는 1,249억 원이다. 여기에 올해만 해도 특활비로 묶였던 국방부 정보보안비를 더하면 내년도 특활비 총액은 2,433억 원으로 불어난다.

사용처를 깐깐하게 캐묻지 않아 '깜깜이 예산'인 특활비 내에서도 정보 예산은 베일에 싸여 있다. 우선 14개 부처 특활비에 숨어 있는 데다가 총액 자체가 공개되지 않는다. 감시 체계도 다른 예산 사업보다 촘촘하지 않다.

정보 예산은 국정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총액으로 받아 관련 부처에 편성한다. 예산당국 심의를 무사통과한다는 뜻이다. 정보 예산에 대한 최종 검증 절차인 국회 예·결산 심사도 특활비처럼 소관 상임위원회가 맡는 대신 국정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진행한다.

정부는 정보 수집·보안 활동 등에 투입하는 정보 예산이 세세하게 알려지면 업무 내역과 인력 규모 유출로 관련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국가 기밀 유출 방지, 해외 정보기관과의 공조 등을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예산을 유연하게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국정원 전체 예산도 공개하지 않는다. 예산안에서 안보비 항목으로만 일부 공개하는데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240억 원 증가한 8,552억 원이다. 국무회의 의결로 집행하는 일반예비비 가운데 약 6,000억 원도 국정원 예산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다른 부처에도 예산을 분산해 놓았다. 전체 규모를 알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국가 안보를 방패 삼은 정보 예산 비공개가 자칫 '제2의 특활비 상납 사건'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정보 예산이 허투루 쓰이는지 잡아내는 검증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특활비 상납 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특활비를 청와대에 보낸 일이다.


실제 누가 쓰는지도 애매

정보 예산의 실제 주인을 두고도 엇갈린다. 정보 예산을 쓰는 부처는 이 예산이 사실상 국정원 돈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법무부는 내년도 특활비(183억 원)가 1억1,800만 원 증가했다는 본보 기사와 관련해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자체 특활비는 늘지 않았고 '타부처 관련 정보 예산 증액'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편성한 정보 예산은 법무부 소관 특활비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국정원은 정보 예산을 편성하고 감시할 뿐 실제 집행은 관련 부처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법무부에 증액·편성된 특활비는 법무부가 쓰고 추후 정보 예산 사용 부분만 국정원에 알린다는 얘기다. 법무부의 설명과 결이 다르다.

정보 예산을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엇갈리는 것은 그만큼 세금이 불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 보니 정보 예산을 투명하게 관리하려면 특활비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과거 특활비로 책정했던 국정원 예산을 2018년부터 안보비로 편성하고 있다. 국방부 특활비가 내년에 정보보안비로 바뀌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국정원 안보비, 국방부 정보보안비를 특활비와 분리해 편성한 건 '눈 가리고 아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론 특활비에 섞여 있는 것보단 더 잘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예산을 특활비와 따로 책정하는 '형식'을 고치기에 앞서 실제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내용'을 잘 따져보는 게 먼저라는 반론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보 예산 항목을 새로 만드는 건 예산·회계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할 수 있다"며 "정보 예산 사업이 적절한지 판단하고 추후 엄격한 감사를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